• 구름조금동두천 20.7℃
  • 흐림강릉 20.4℃
  • 구름조금서울 23.5℃
  • 맑음대전 25.7℃
  • 구름많음대구 25.0℃
  • 울산 23.7℃
  • 맑음광주 26.4℃
  • 부산 25.8℃
  • 구름조금고창 24.9℃
  • 제주 28.5℃
  • 구름조금강화 21.7℃
  • 맑음보은 24.5℃
  • 맑음금산 25.5℃
  • 구름많음강진군 28.2℃
  • 흐림경주시 23.4℃
  • 구름많음거제 26.0℃
기상청 제공

미디어비평

특권의 공영방송에서 봉사하는 공영방송으로

공익 이념을 한 방송사에게 통째로 위탁하려면 공적책무와 국민신뢰 뒷받침돼야
英BBC사장, 실언·오보 등으로 종종 사임...日NHK 사장도 직원비리·허위답변으로 사임
특권 돼버린 KBS, 공영방송 책무 충실보다 특정 정파에 충성...일말의 책임의식도 없어
분리징수 사태 등 책임지고 이사장, 사장, 경영진 당장 사퇴해야

황 근(선문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공영방송이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더 이상 새삼스럽지 않다. 영국인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 사람들도 공영방송 상징처럼 생각했던 BBC조차 존립 근거를 의심받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수신료 분리 징수로 그야말로 쑥대밭이 된 KBS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공영방송 위기론이 처음 등장한 것은 꽤 오래되었다. 1990년대 케이블TV나 위성방송 같은 다채널방송들이 급성장하면서 공영방송의 토대가 되었던 ‘공공독점(public monopoly)’ 체제가 붕괴되면서부터이다. 수십 개 채널을 제공하는 유료방송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잘 보지도 않고 상업방송과 큰 차이 없는 공영방송에 세금까지 내가면서 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굳이 매체환경 변화가 아니더라도 공영방송 자체가 제도적으로 매우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공영방송 제도가 공익이라는 추상적 이념을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지금의 공영방송 BBC를 만든 리즈 경은 ‘청교도적 가부장주의(Puritanic Paternalism)’를 목표로 내세웠다. 정확한 정보와 윤리적인 양질의 프로그램으로 국민을 계도하는 방송을 만들고자 했다.

 

그렇지만 공익 이념을 한 방송사에게 통째로 위탁한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전권을 위임받은 독점 방송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공적 책무를 수탁받은 조직이 얼마나 건강하고, 또 국민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가는 가변적일 수밖에 없다.

 

일본 NHK나 캐나다 CBC, 호주 ABC는 모두 BBC를 모델을 해서 만들어졌다. 실상은 크게 다르지만 우리 KBS도 BBC를 자신들의 롤 모델이라고 표방하고 있다. 수신료 인상을 추진할 때마다 “영국 BBC처럼 되기 위해서”라는 말을 항상 반복하였다.

 

그렇지만 우리 국민 대다수는 KBS가 BBC처럼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 외형적 모습은 유사하지만, 실제 그 조직을 경영하고 안에서 활동하는 구성원들의 인식과 행태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은 헤겔이 말한 일종의 ‘자기완성체’ 조직이어야 한다. 그것은 부여된 공적 책무에 충실하기 위해 조직은 물론이고 그 구성원 각자가 책임 있는 공적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언론학자 레드베터는 “공영방송 종사자들은 문화를 선도한다는 프론티어 정신 즉, 특이체질(idiosyncrasies)로 무장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리처드 샤프 BBC 사장이 두 가지 사건으로 사직하였다. 보리스 총리에 대한 금융알선 의혹과 스포츠 프로그램 출연자의 인종차별 발언 때문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부도덕하다고 할 수는 있어도 중대한 범법행위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BBC 사장 사임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이전에도 보도를 둘러싼 정부와의 갈등, 오보, 직원 비리 같은 일로 사임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2005년에 일본 NHK의 에비사와 가쓰지 회장도 직원들의 잇따른 비리로 촉발된 시청료 거부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임한 바 있다. 그 이전에 시마게이지 회장도 국회 허위 답변 때문에 사퇴한 바 있다.

 

하지만 어떤 KBS 사장이 그런 이유로 중도 사퇴했다는 기억이 거의 없다. 물론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오보를 넘어 편파보도 더 나아가 가짜뉴스를 마구 퍼트려도, 재난방송 하지 않는 재난방송 주관방송이어도, 경영이 악화되어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본인과 사원들의 비리가 터져 나와도 사퇴는커녕 사과 한번 제대로 한 적 없다.

 

BBC대로라면 아마도 임기를 제대로 마친 KBS 사장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NHK 에비사와 가쓰지 회장 사퇴 건에 비추어 본다면, 수신료 분리징수를 사태를 야기한 KBS 이사장과 사장 그리고 경영진은 당장 사퇴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일말의 책임 의식조차 느끼지 않고 당당한 이유는 이들의 생존 근거가 국민이 아니라 정치권력에 있기 때문이다. 공영방송 책무에 충실하는 것보다 특정 정파에 충성하는 것이 그 자리를 보전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것이다.

 

공영방송은 국민들로부터 공익적 방송서비스를 수탁받고 수행하는 주체다. 이를 위해 국민들은 수신료를 지불하고, 법적으로 독립성을 보장해주고 있다. 이러한 안정적 지원과 제도적 보장은 책임이 수반되지 않게 되면 특권이 되게 마련이다.

 

그 책임은 조직에게 부여된 것이지만, 결국 실천은 구성원 개개인의 몫이다. 특권이 되어버린 공영방송 KBS를 책임 있는 공영방송으로 전환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