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은 자폭”, “코로나는 미국이 발원지”(이경래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 과거 발언)
“현충일 선물 잘 받았다”(최원일 천안함 함장)
“함장은 원래 배에서 내리면 안 된다. 부하들 다 죽이고 어이가 없다”(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
현충일(6월6일) 전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민주당 혁신위원장에 이경래 씨(69)를 임명했다가 9시간여만에 이 씨가 사퇴한 사태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떠도는 멘트들을 접하면서 가짜뉴스와 반지성주의, 국가의 존재 이유, 인간의 잔혹함, 그리고 정치의 타락까지 온갖 단상들이 떠오른다.
먼저 가짜뉴스와 반지성주의에 관한 것이다. ‘이재명 지키기 범국민대책위’ 출신으로 ‘사단법인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인 이 씨는 지난 2월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천안함이 자폭됐고 이를 미(美) 패권세력들이 조작해 남북관계를 파탄냈다’고 썼다. 천안함 관련 가짜뉴스 중에서도 질이 안 좋은 최악의 음모론이다. 상상이라도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는지 경이로울 정도이다.
천안함 사건은 일종의 테러이다. 전쟁도 군사 간 충돌도 아니다. 몰래 숨어있다가 치고 빠지는 수법은 가장 비열한 짓이다. 싸움에도 인간존엄성에 대한 최소한의 신사도가 있는 법이다. 그래서 선전포고도 있고 포로협정도 있고 전범재판도 있는 것이다. 더욱이 지금은 전투가 한창인 상황도 아니지 않나.
2015년 8월 비무장지대(DMZ) GP 통문에 북한군이 몰래 설치해놓은 목함지뢰에 우리 젊은 장병 2명이 발목을 잃었다. 대량 살상이 아니라고 대충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꽃다운 나이 젊은 장병 2명이 불구가 됐지만 이는 우리 군장병 전체에 대한 암습이었다. 정정당당하지 못한 비열한 수법이다. 전투도 아니고, 교전도 아니고 그냥 얍삽한 양아치 건달 수법이었다. 더 제대로 응징했어야 했다.
이런 암습은 원래 흔적도 증거도 잘 없다. 그러나 와중에도 어뢰 등 많은 객관적 증거를 확보했다. 북한군 소행임이 명백히 밝혀졌다. 그런데도 더 정확한 증거를 요구하면서 자작극이니, 미국 개입설이니, 사고설이니 등등의 음모론적 가짜뉴스를 함부로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다. 가끔 그들이 누구 편인지조차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제대로 전투도 벌여보지 못하고 졸지에 배와 전우들을 잃은 최원일 함장의 가슴은 지금도 미어질 것이다. 하물며 현충일은 어떻겠나. 국토방위 임무 수행 중 적의 비열한 공격으로 희생된 장병에 대한 추모와 예우는 갖추지 못할망정 ‘천안함 자폭’ 운운하는 사람을 거대 야당 혁신의 우두머리에 앉히겠다니. 기가 막힐 노릇일 터, 오죽하면 ‘현충일 선물’이라 했을까. 그것은 가짜뉴스와 반지성주의의 득세를 마주하면서 터져 나온 넋두리일 것이다.
과연 이재명 대표는 이 씨의 이러한 과거 발언이나 행적을 모르고 임명했던 것일까. 이와 관련 이성우 천안함 유족회장은 한 유튜브와의 인터뷰에서 “이래경 씨의 과거 천안함 발언은 민주당이 조금만 살펴봐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것”이라며 “난 이 대표가 이 씨 발언 내용을 알고도 어떤 의도를 갖고 했다고 본다. 즉, 강성지지층 결집을 위한 노림수 아니냐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래경 씨는 지난 2월 “대한민국은 ‘윤가(윤석열 정부)’ 집단으로 복합위기 누란에 빠졌다” 면서 “유일한 길은 하루라도 빨리 윤가 무리를 권력에서 끌어내리는 일뿐”이라고 윤 대통령에 대한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아마도 이런 점이 거대 야당 대표에게 어필해서 그의 눈과 귀를 덮었다면 나라의 미래가 더욱 암울하다.
최 전 함장은 6일 현충일 추념식장을 찾아 이 대표에게 “우리는 전국 팔도에서 모여 대한민국을 지켰던 군인들이지, 특정 정당이나 특정 지역을 지켰던 군인들이 아니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 그러시느냐”는 취지로도 말했다고 한다. ‘천안함 자폭’ 가짜뉴스로 인해 거대 야당 민주당이 자폭의 길로 갈 수도 있다는 아픈 지적으로 들린다.
이래경 씨는 기자들에게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사인이 지닌 판단과 의견이 마녀사냥식 정쟁의 대상이 된 것에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개인과 사견(私見)과 공공에 대한 인식이 뒤죽박죽된 말로 그 해석 또한 난감하다.
개인 자격으로야 뭐든 얘기할 수 있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이고 언로도 훤히 트여있다. 그러나 공인으로서, 혹은 언론, SNS와 같은 공적인 경로를 통할 때는 그래서는 안 된다. 그는 이미 ‘이재명 지키기 범국민대책위’에 관여하고 사단법인 단체의 명예이사장이다. 그런 사람이 근거 없는 얘기를 함부로 하면 가짜뉴스가 되고 대중의 인지에 영향을 미치고 민주주의 기반을 흔들 수 있는 것이다. 공공의 자격으로는 음모론이나 헛소리, 상스러운 말 등 ‘아무 말 대잔치’를 함부로 해서는 안 되고 잘못 말한 데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최 전 함장의 상처 난 가슴에 또 한 번 소금을 뿌리고 대못질을 했다. 권 수석대변인은 이 씨의 혁신위원장 임명이 ‘천안함 자폭’ 등 발언으로 논란을 빚자 “함장은 원래 배에서 내리면 안 된다. 부하들 다 죽이고 어이가 없다”고 논평했다. 적군의 테러에 전우를 잃은 함장에게 할 얘기는 아니다. 그것도 입으로만.
간혹 천안함, 세월호, 이태원 참사 사건들이 함께 거론되기도 한다. 세 사건 모두 대표적인 가짜뉴스 사례에도 늘 빠지지 않는다. 엄연히 일어난 사실을, 그것도 비극을, 왜 한쪽 눈으로만 보려 하고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 전에 어느 사건이 더 슬프고 더 억울한지 굳이 따져봐야 할 일일까. 우리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눈을 감고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