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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칼럼

[白臨 斷想] 5.18 사진, 누가 주인공? 보훈처가 올린 사진 논쟁

5.18기념재단서 제공, 2019년 문재인 청와대 때도 게재했던 같은 사진
이젠 독자, 네티즌들이 사진 해석 전문가까지 돼야 할 판...나치 선전상마저 떠 올라

 

국가보훈처가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맞아 트위터에 올린 사진을 놓고 ‘사진의 시선, 주인공이 누구냐’ 논쟁이 벌어졌다. 이 사진은 5.18기념재단에서 제공한 것으로 과거 문재인 정부 청와대 공식 트위터에서도 게재한 것이다.

 

보훈처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밑거름이 된 오월 정신을 잊지 않겠습니다”라면서 민주화운동 당시 사진을 함께 올렸다. 사진은 밀집한 계엄군 쪽에서 광주 시민들을 바라보는 1점 소실 장면이다. 사진 하단에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이라는 큰 글씨 아래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굳건히 지켜낸 오월정신’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그러나 온라인을 중심으로 댓글이 실렸다. "누가 보면 계엄군이 민주화 운동 한 줄 알겠다", "보훈처는 계엄군 편에 서서 5.18을 바라보는 것이냐"는 등의 비판적 내용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일부 인사들도 가세했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계엄군이 주인공인 이런 사진을 굳이 2023년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국가보훈처의 5‧18 기념 이미지로 우리가 봐야 하나?”라며 “이런 사진을 5‧18 기념 이미지로 승인하는 장관 후보자(보훈처가 보훈부로 승격 예정),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라고 따졌다.

 

이동학 전 민주당 최고위원도 이날 페이스북에서 “꼬투리가 아니다. 사진의 앞뒤가 바뀌어야 맞다. 맞지 않는 사진은 쓰지 말아야 한다”며 “누구 입장에서 바라봐야 하나. 앞에서는 계승을 말하고 뒤에서는 자꾸 관행적인 시선이 튀어나오니 진정성을 의심받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논란이 벌어지자 보훈처는 입장문을 내고 “5·18의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주제로 여러 장면의 사진을 보여주려 했으며 그 중 하나였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보훈처는 이어 “이번 소셜미디어 캠페인의 목적과 의도가 아무리 좋았다고 하더라도 5‧18 유가족이나 한 분의 시민이라도 불편한 마음이 드신다고 하면 결코 좋은 의미를 전달할 수 없다”고 사과한 뒤 해당 사진을 삭제했다.

 

보훈처는 지난해 5·18에는 민주주의의 새싹이 움트는 그림을, 2021년에는 시민들이 광장에 가득 모인 사진을 사용했었다.

 

격동의 1980년대 시위취재를 해본 기자들은 안다. 특히 시위대와 진압경찰이 마주 선 경우 사진 기자들은 시위대 쪽에서 사진을 찍기가 매우 어렵다. 과거 헬멧과 방독면을 쓴 사복 경찰, 이른바 ‘백골단’들은 시위대건 기자이건 가리지 않고 두들겨 패곤 했다. 여차하면 사진기를 빼앗아 필름을 훼손하는 건 당연한 순서였다. 그러니 자연스레 ‘보도’ 완장을 차고 진압경찰 쪽에서 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았다. 백골단, 전경이 곤봉을 들고 달려오는 반대쪽 사진 자료는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문제의 사진에는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굳건히 지켜낸 오월 정신’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윤 대통령이 이날 기념식서 했던 말이다. 얼마 전에도 대통령의 외신 기자회견에서 ‘주어’가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이번에는 보훈처가 올린 5.18 사진의 문구가 다시 소환됐다. 이 사진 문구의 주어는 무엇인가. 당연히 ‘오월 정신’이다. 더 확대해석하면 독재와 헌정 유린에 맞선 광주 시민과 자유민주주의를 믿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이다.

 

그런데 사진을 문제 삼는 이들은 사진의 시선, 주인공이 계엄군이라는 주장이다. 그러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지켜낸 주체가 마치 계엄군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식의 해석을 내놓았다. 견강부회는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안병길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민주당이 생트집 잡은 이 사진은 2019년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직접 5·18 기념사진으로 썼던 것과 동일 사진”이라며 “민주당 말대로라면 문재인 전 대통령이 계엄군 편에서 계엄군을 주인공으로 삼았단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안 의원은 “민주당의 억지 트집이 문재인에게 침을 뱉은 꼴”이라며 “이처럼 마치 5·18 민주화운동을 자신들의 정치적 향유물로 여기며 정치적 선전·선동의 도구로 삼는 행위야말로 오월정신을 오염시키는 구태”라고 질타했다.

 

문제를 제기하는 쪽에서는 이 사진이 원래 나경택 전 ‘전남매일신문’ 기자가 직접 촬영한 흑백 사진인데 보훈처가 저작권자 동의 없이 이를 컬러로 변형해 저작권 위반 소지가 있다고 주장도 한다. 보훈처는 물론 “왜곡 변조가 아니다”라고 해명한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도 2019년 2월18일 같은 사진을 청와대 소셜미디어 홍보게시물에 사용하면서 사진 일부를 자르고 전체적으로 어둡게 처리하긴 했지만 사진에 별도의 저작권자 및 제공자 표기는 없었다.

 

같은 사진이 그때는 괜찮고 지금은 왜 문제가 될까. 문재인 정부는 같은 편이고 현 정부는 다른 편이라서 그런가. 진영 논리에 따라 해석의 관점이 달라지고, 꼬투리를 잡느냐 마느냐가 달라진다면 그것이 과연 5.18 광주 정신일지 되돌아보게 한다.

 

사진 한 장을 놓고 벌어지는 논쟁을 마주하면서 사진이 선전·선동의 도구로 이용될 때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떠오른다. 이젠 보훈처 공무원, 독자, 네티즌들이 모두 사진 해석 전문가까지 돼야 할 판이다.

 

문득 나치 선전장관 괴벨스가 떠오른다. 그는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그다음에는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모든 사람이 믿게 된다’는 프로세스에 집중한 인물이다. 그는 괴테와 더불어 독일이 낳은 언어의 천재였다. 그러나 그 재능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결과는 극과 극이다. 괴테는 주옥같은 언어와 문장으로 세계적인 대문호가 되었고 괴벨스는 히틀러를 추종하는 희대의 나치 선전 장관이 되었다.

 

이번 사태를 놓고 무조건 이념 편향적 과잉 해석이라고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실제로 사진 한 컷이 주는 메시지가 어마어마할 수도 있다. 그래서 공적인 사진을 쓸 때는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하고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 계기로 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