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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칼럼

[白臨 斷想] “형님 정신병원에 넣으라고 시켰잖아요” 가 불러온 대법원 무죄 판결

유동규, 이재명 면전에 한 실토...가짜뉴스 팩트체크의 한 단서 제공할 수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대장동 사건 재판서 설전 중 진술
대장동 관련 화천대유 전 고문 권순일 전 대법관이 대법원 무죄 판결 주도

가짜뉴스 팩트체크는 여러 경로를 통해 할 수 있는데 재판도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이른바 ‘친형 정신병원 강제 입원’ 사건이 그런 단초를 제공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지난 4월 28일 대장동 개발 관련 공판에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면전에서 “형님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지 않았느냐”고 쏘아붙이듯 진술했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부장판사 강규태) 심리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5회 공판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해 “시장님은 왜 형님을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켯습니까. 그런 범죄라든지 그런 걸 밑에 사람들 안 시켰습니까. 다 시키지 않았습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21년 9월 이른바 ‘대장동 사건’이 터진 이후 공개적으로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은 것은 처음이다. 지난 3월 31일 첫 대면서도 서로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다고 한다.

 

친형 정신병원 강제 입원 사건 관련 이 대표의 허위사실공표 혐의 사건은 이미 2020년 10월 대법원서 무죄 판결이 났다. 하지만 주요 관련자가 뒤늦게 법정서 임의로 한 진술을 무심코 넘어갈 수는 없을 것 같다.

 

물론 이런 진술이 약간이라도 재심 사유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사건의 실체를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는 데는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가짜뉴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짜 수사, 가짜 선고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 역시 허위 정보에 의한 선전·선동과 팬덤정치로 슬쩍 넘어갈 수는 있어도 역사의 법정만은 피해갈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이 대표는 성남시장 재임 시절인 2012년 6월 보건소장, 정신과 전문의 등에게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도록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로 기소됐었다. 또 이와 관련해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 TV 토론회에서 '친형을 강제입원 시키려고 한 적이 없다'는 취지의 허위 발언을 한 혐의(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도 받았다.

 

이를 모두 무죄로 판단한 1심과 달리 2심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해 유죄로 보고, 이 대표에게 경기도지사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서 그대로 확정될 경우 이 대표는 지사직을 잃는 것은 물론 대선에도 출마할 수 없게 될 형편이었다.

 

대법원은 그러나 이 사건 상고심에서 "이 지사의 토론회 발언은 상대 후보자의 의혹 제기에 대한 답변·해명에 해당하며 이 과정에서 한 말은 허위사실 공표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이 대표는 당선무효형에서 벗어나 날개를 단 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까지 훨훨 날게 된다. 대법원 판결 하나로 대한민국의 역사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 대목에서 대장동 사건의 화천대유 고문 활동을 한 권순일 전 대법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대법관 재직 시절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무죄 취지 파기환송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화천대유는 이 대표가 지사 시절 ‘설계’했다는 성남 대장동 개발 사업에 시행사로 수천억 원 이득을 봤고, 그런 화천대유가 이 지사를 기사회생시킨 권 전 대법관에게 월 1,500만원을 주고 고문으로 영입한 배경이 석연치 않을 수밖에 없다.

 

대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이재명 지사는 성남시장 시절이었던 2012년 4월, 자신을 비방하고 성남시청 등에서 소동을 벌이는 등 각종 기행을 보인 친형의 정신질환이 의심된다며 분당보건소장 등에게 ‘강제입원 절차를 진행하라’고 여러 차례 지시했다. 이 지사는 이를 거부하는 직원들에 대해 ‘직무유기’라며 질책했다.

 

6년 뒤인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둔 경기지사 후보 티브이 토론회에서 김영환 바른미래당 후보가 이 대목을 묻자 이 지사는 “그런 일 없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이에 대해 2심 재판부는 “빼도 박을 수도 없는 거짓말”임을 인정, 유죄를 선고했다. 그런데 권순일 대법관의 강력한 주장으로 대법원이 이를 뒤집었던 것이다.

 

권 전 대법관은 당시 “주요 선진국 법의 영문판을 봐도 허위 사실 공표죄의 공표는 ‘publish’(출판하다)로 표기돼 있다”며 “선거 출판물이 아닌 TV 토론 발언까지 이 법을 적용하긴 무리”라는 의견을 냈었다.

 

이런 대법원 판결대로라면 선거 기간에 진실을 다투는 가장 유용한 방식인 티브이 토론에서 후보자는 가짜뉴스와 허위 정보, 선전·선동 식의 교묘한 말을 해도 괜찮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선거판이 흐려지면 잘못된 국민 대표가 선출되고, 궁극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유동규라는 한 사람의 법정 진술을 갖고 대법원 판결까지 시비를 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과 SNS, AI까지 등장해 온통 가짜뉴스와 반지성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법원 판결마저 더 이상 신뢰가 땅에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형님을 강제 입원 시켰잖아요!”라는 법정 진술이 자꾸만 귓가에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