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많음동두천 23.3℃
  • 흐림강릉 21.9℃
  • 구름많음서울 26.3℃
  • 구름많음대전 25.6℃
  • 흐림대구 24.7℃
  • 박무울산 23.6℃
  • 구름조금광주 26.9℃
  • 흐림부산 27.1℃
  • 구름조금고창 26.2℃
  • 맑음제주 27.7℃
  • 구름많음강화 22.9℃
  • 구름많음보은 23.5℃
  • 구름많음금산 24.1℃
  • 구름조금강진군 26.8℃
  • 흐림경주시 24.1℃
  • 흐림거제 26.2℃
기상청 제공

논평/칼럼

[白臨 斷想] ‘가짜 판결’과 사법 사망선고

변호사 단체, “‘과정·절차 위헌이라도 결과는 정당’이라는 ‘검수완박’ 憲裁 결정은 모순이자 궤변”
절차적 정당성 중요시하는 민주주의 원칙과도 어긋나
검수완박뿐 아니라 ‘법판완박(법원판결 완전 박탈)’도 오지 말란 법 없어

 

가짜뉴스는 진짜 뉴스로 바로잡아 응징한다. 누가? 언론이 하고 눈 밝은 독자, 국민이 그렇게 한다. 그렇다면 가짜 판결은 없을까. 가짜 판결은 누가 견제하고 감시하나. 이쯤 되면 난감하다. 신뢰 잃은 심판에게 무엇을 맡긴다는 말인가.

 

그 전에 “판결이 가짜라니?”, “감히 사법부의 권위에 도전하다니?”. 대뜸 이런 반론부터 나올 법하다. 그렇다면 가짜뉴스는 있고 가짜 판결은 없나? 가짜뉴스란 용어도 과거엔 없었다. ‘가짜’와 ‘뉴스’가 함께 할 수 없는 모순된 용어이기 때문이다. 뉴스의 권위를 떨어뜨려 이용하려는 반(反)지성주의자들이 만들어낸 용어이다. 그러나 지금은 ‘가짜뉴스’란 용어가 일반화됐고, 때로 공존 공생하며 부와 권력과 명성까지 가져다준다.

 

아무리 그래도 법원 판결을 ‘가짜’라는 용어와 묶는 것은 좀 과하다는 반론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여받은 그 권위를 스스로 초라하게 만들고 있는 게 사법부 자신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우라 했거늘, 모순적 판결을 함으로써 정의와 상식을 저버리고 있다는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압도적 거대 의석 더불어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에 관한 헌법재판소 결정이 두고두고 논란에 오를 전망이다. 지난 24일 헌법재판소의 이 결정은 한 마디로 “절차는 위헌인데, 그 결과 나온 법은 유효하다‘라는 취지다.

 

공은 다시 정치권과 국회로 넘어와 공방을 시작했다. 각 변호사 단체 등 법조계에서도 찬반이 갈려 한쪽에선 헌재 결정의 모순과 부당성 등을 따지고 다른 쪽에선 헌재에 손을 들어 주었다.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헌변)은 성명을 통해 "헌재의 결정은 과정과 절차가 헌법과 법률에 위배 돼도 결과는 정당하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된 결정이자 궤변으로서, 법치주의에 대한 묵과할 수 없는 중대한 도전이며 파괴행위"라고 비판했다.

 

'착한법만드는사람들'은 "헌재가 예정된 심판기일을 무리하게 당김으로써 검수완박법을 강행한 민주당 및 전 정권 몫의 재판관들이 서둘러 중요 사건을 판결해 버렸다"라고 지적했다. 반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헌법상 삼권분립과 민주주의 원리에 비춰 당연한 귀결“이라며 헌재 편을 들었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앞으로의 판결들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른바 독수독과(毒樹毒果) 즉,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毒樹)에 의해 나온 2차 증거(毒果)의 증거능력은 인정할 수 없다‘는 이론에도 배치된다. 이런 원칙이 왜 형사소송법의 확고한 증거 법칙으로 자리 잡았는지를 되새겨 볼 일이다.

 

헌재는 2009년에도 국회의 미디어법 처리 과정에서 논란이 된 대리투표 등에 대해 ’문제가 있지만 법안은 유효하다‘라고 판단한 사례가 있다. 그때도 ’절차상 하자가 법률을 무효로 할 정도는 아니다‘라는 취지를 내세웠다.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가 절차적 정당성이다. 목적과 결과만 좋다면 과정이야 어찌 됐건 다 덮어주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그렇다면 박정희식 장기 독재·인권탄압도 국가 경제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으므로 다 용인해줘야 할까. ”박 전 대통령이 경제발전 과정에서 위헌 행위를 저질렀으나 결과적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한 일이므로 유신헌법, 긴급조치가 무효는 아니다“라는 논리와 무엇이 다른가. 그렇다면 북한은? 북한 입장서 보면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제국주의에 맞서 주체의 강성대국을 이루려면 1인 독재, 3대·4대 세습, 병영국가 식 통치도 모두 합헌일 것이다.

 

헌재뿐만 아니다. '김명수 대법원'도 스스로 신뢰를 떨어뜨리게 하는 판결을 한다는 비난으로부터 떳떳할 수 없을 것이다. 대법원은 지난 정권 때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경기지사 선거 TV 토론에서 친형의 정신병원 강제 입원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허위 발언을 해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사건을 2020년 7월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 했다. 이 대표가 대선에 출마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이때 나온 논리가 TV 토론에서 돌발적 질문에 대한 답변이기에 거짓으로만 단정할 수 없다는 즉, ’소극적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니다‘라는 기가 막힌(?) 논리였다. 이때 5대5의 팽팽한 상황에서 판결을 가른 것이 당시 선임이자 대장동 사건의 ’50억 클럽‘에도 등장하는 권순일 전 대법관이다. 앞으로 TV 토론에서는 그 정도 거짓말은 해도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판결이다.

 

법의 대표적 속성은 정의와 법적 안정성, 합목적성 등이다. 그래서 법원은 태생적으로 보수적이란 말을 듣곤 한다. 이때 보수란 말은 기득권 수호나 무사안일, 눈치 보기, 시류 영합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법과 정의, 양심에 따라 사회 혼란을 바로 잡아주는 심판의 역할을 제대로 하라는 것이다. 때로 조물주나 신이 할 일을 인간이 대신 하는 역할을 할 때도 왕왕 있다. 그만큼 책임이 무겁기에 삼권분립 하에서도 어쩔 수 없이 심판 역할을 할 때가 많은 것이다.

 

특히 최고 법원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하급심들의 중구난방 판결을 방지하고 원칙과 기준을 정해주는 곳이다. 그런 헌법재판소가 누가 보더라도 헷갈리고 앞뒤 안 맞는 결정을 하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로까지 비칠 수 있다. 혼란을 막아야 할 본부가 혼란 야기의 발원지가 돼서야 하겠나.

 

헌재 재판관 9명 중 8명은 문재인 정권에서 임명됐다. 그중 5명은 이른바 진보 성향으로 알려진 민변과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다. 이번에도 나머지 4명 재판관은 국회 법사위원장의 가결 선포 행위가 무효라고 했으나 이들 진보 성향 재판관들이 유효라고 해서 결국 기각 결정됐다.

 

바야흐로 가짜가 판치는 세상이다. 가짜뉴스뿐 아니라 가짜 상품, 가짜 건강식품, 가짜 인간들이 넘쳐나고 있다. AI(인공지능)와 로봇이 지배하는 세상, 영화 매트릭스가 점점 현실화하고 있으니 그 자체로 판타지다. 그럴수록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다. ’가짜뉴스‘를 바로 잡고 ’가짜 판결‘을 감시해야 한다. 그 사이 어디쯤 있을 ’가짜 검찰‘도 마찬가지이다.

 

가짜들이 득세하는 판타지 세상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하다. ’검수완박‘은 물론 ’법판완박(법원 판결 완전 박탈)‘도 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가짜 판결은 사법 사망선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헌법재판소가 스스로 존재 이유를 저 버려 수명을 다하는 일은 진정 일어나지 않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