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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모둠

외교 전쟁 중에 내부 총질 선전·선동전이라니

12년만에 꽉 막힌 한일 관계 개선 물꼬 튼 성과에도 불구 비난 일색
거대 야당, 북한, 日 언론의 우파적 가짜 뉴스에 한 목소리
민주당 법률위 부위원장 “우리나라 대통령실보다 일본 언론이 더 신뢰가 간다”

 

 대통령이 외교를 위해 해외에 나가기만 하면 초긴장의 연속이다. 겉보기완 달리 외교란 본래 외국과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외교 전쟁을 나가는 내내 무슨 내부총질 선전·선동전이라도 벌어진 양 온통 혼란스럽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16~17일 한·일 정상회담도 마찬가지이다. 정상회담의 의의나 성과, 비전과 과제 등에 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처음부터 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 그리고 한일 간 과거사 갈등을 부추기는 조작 보도, 추측성 보도들이 난무했다.

 

출국 훨씬 전부터 더불어민주당은 ‘제3자 변제’라는 정부의 징용 피해자 해법에 대해 ‘이완용의 부활’이라고 했다. 이재명 대표는 난데없이 “삼전도의 굴욕”에까지 빗대 맹비난했다.

 

윤 대통령 방일 첫날에는 탁현민 씨(문재인 정부 의전비서관)가 자신의 SNS에 일장기만 교묘하게 보이도록 한 행사 사진을 올려놓은 채 윤 대통령이 일장기에만 절을 하는 굴욕외교를 했다고 흥분했다. 민주당 일부 의원과 좌파 온라인 이용자들이 즉각 퍼 나른 것은 물론이다. KBS는 한술 더 떠서 이 장면을 생중계하면서 앵커가 윤 대통령이 일장기에만 경례한 것 같다는 취지로 설명했다가 뒤늦게 공식 사과 방송했다.

 

윤 대통령을 궁지로 모는 공세에는 일본 언론도 가세했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 기간 동안 독도나 위안부 합의에 관한 문제는 의제 자체에 없었고, 실제 논의한 적도 없다는 것이 대통령실의 공식 입장이다. 그런데도 교도통신 등 일부 일본 언론들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이 문제들을 거론한 것처럼 보도했다. 그 취재 근거는 ‘정부 관계자의 말’과 ‘정부 소식통의 해석’이라고 설명했다. 추측 보도, 가짜뉴스에서 흔히 써먹는 고전적 수법이다.

 

대통령실이 거듭 공식 부인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일부 우리 언론들도 여과 없이 받아썼다. 18일 연합뉴스TV에 패널로 출연한 더불어민주당 법률위 부위원장은 ‘기시다 총리가 위안부 합의를 촉구했다’는 일본 언론 보도에 대해 “저는 우리나라 대통령실보다 일본의 언론이 더 신뢰가 간다”라는 말까지 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일본의 하수인이 되는 길을 선택했고 영업 사원이 결국 나라를 판 것”이라고 공격했다. ‘종북’ 성향 민주노총 위원장의 ‘나라 팔아먹은 1호 영업사원’ 발언과 흡사하다. 이 대표는 또 “일본에 조공을 바치고 화해를 간청하는 항복식 같다”, “오므라이스에 국가 자존심과 인권, 정의를 맞바꾼 것”이라는 수준 이하 원색적 비난을 퍼부었다. 민주당 지도부도 “친일 정상회담”, “망국적 야합”, “숭일(崇日)” 등의 ‘말 폭탄 공세’를 쏟아냈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북한 측 평가도 한마디로 ‘굴욕외교’, ‘굴종 외교’이다.

 

이쯤 되면 한 가지 의문이 떠 오른다. 누가 이완용이고, 누가 친일파일까. 이번 한일 정상회담만 놓고 보자면 북한과 한국의 압도적 다수 의석 야당과 우익 성향 일본 언론 보도가 한목소리로 비슷하다. 의기투합이라도 한 것이 아니라면 이 기이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다.

 

일본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독도, 위안부 문제에 대한 ‘언론플레이’를 하리란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의 의의를 생각해보면 최대한 경계하고 막았어야 했다. 출구 없는 한일 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반대파들의 온갖 비난과 정치적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통 큰 행보에 나선 한국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고려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뻔히 예상되는 추측성 보도나 가짜뉴스를 냉정하게 막는 노력을 해주지는 못할망정 이를 부추기는 듯한 태도를 보인 일부 일본 정부 관계자의 행태가 영 미덥지 않다.

 

현 정부를 싫어하는 쪽 국민과 민주당 입장도 이해는 가지만 그렇다고 정상적인 국가 운영과 대통령의 외교활동까지 사사건건 성토 일색이면 곤란하다. 특히 가짜뉴스나 선전·선동전, 아군끼리 내전 양상으로까지 비치는 지경으로 가면 더 이상 답이 없다.

 

언론이 본연의 역할인 비판의 날을 세워야 할 때가 있고, 야당 역시 정부 여당을 상대로 싸워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서로 돕고 협조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특히 외교·안보 분야만큼은 초당적(bi-partisan)인 단결이 필요하다.

 

윤 대통령의 이번 방일의 가장 큰 의미는 오랜 시간 꽉 막혔던 양국 정상 간 교류의 물꼬를 튼 것이다. 양국은 가해자와 피해자, 그로 인한 불신과 증오의 치유하기 힘든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웃이다. 언제까지나 얼굴만 붉힌 채 긴장 관계로 지낼 수 없다. 그런 ‘특수관계’가 12년 동안이나 서로 문을 걸어 잠그고 지내왔으니 우선 만나는 물꼬를 튼 것만으로도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1박 2일의 짧지만 내실 있는 ‘셔틀 외교’의 첫 순항만으로도 나름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기시다 총리가 가시적인 과거사 사죄 없이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라는 기존 태도만 고수한 것은 실망스럽고 아쉬운 대목이다. 그러나 한일 양국에 도움이 되는 성과도 적지 않다. 문재인 정부 시절 중단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정상화, 반도체 3대 핵심 소재 수출규제 해제, 한일 재계의 ‘미래 파트너십 기금’ 조성 등은 이번과 같은 윤 대통령의 특별한 노력 없이는 풀기 힘든 과제들이었다.

 

독도 영유권, 위안부·강제 징용 사죄 및 배상 문제 등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풀기가 난감하다. 가장 편한 방법은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 입으로 “No”만 외치면서 가만히 있으면 본전은 한다. 하지만 모든 지도자, 모든 정권이 그런다면 무책임한 짓이다. 누군가는 끊어야 한다. 한일 관계를 '김대중·오부치' 정신으로 복원하려는 윤 대통령의 결단이 '굴욕'이면 김대중 전 대통령도 그렇다는 얘기인가. 윤 대통령은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강제 징용 배상 문제부터 결단을 내렸다. 양국 미래와 미래 세대를 위한 한일 관계 개선 의지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미일 안보 동맹체제 속에서 한국과 일본의 끝없는 반목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상황이 심화하면 북한 김일성이 자주 언급했던 이른바 ‘갓끈 이론’이 현실화할 수 있다. 한미일 동맹을 갓끈에 비유, 견고한 미일 동맹 갓끈은 건드릴 수 없으니 고리가 약한 ‘한일 갓끈’만 끊으면 갓이 바람에 날아가 버린다는 이야기다. 한국 내 반일 감정만 잘 이용하면 된다는 전략이다. 북한과 남한 내 반일 죽창가 선동 세력, 그리고 일본의 우익의 주장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바로 그 지점일 것이다.

 

현실이 될까 두려운 판타지 시나리오가 아닐 수 없다. 냉혹하고 처절한 경제전쟁의 시대, 과연 누가 이완용이고 친일파인지 나아가 누가 안중근인지 가려낼 지혜가 필요하다. 눈 밝은 국민이 잘 지켜보고 판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