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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칼럼

[창간 축하 칼럼] 바른언론 트루스가디언의 창간을 축하하며 : 왜 지금 팩트체크인가.

팩트를 상실한 저널리즘은 선전·선동, 기망(欺妄), 사술(詐術)과 구별 안 돼
디지털 전환은 그 가능성 만큼이나 위험도 내포
깜깜한 미디어 전환기의 바다에 한 줄기 빛을 밝히는 등대가 되길

우리가 흔히 저널리즘(journalism)이라고 통칭하는 공론적 소통은 민주적이고 성숙한 사회를 지켜내고, 또 역으로 그러한 사회가 지켜내야 할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이다. 이러한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할 때 사회성원들 간의 정상적 관계형성 및 상호작용은 차질을 빚고 사회의 제반 기능들은 효율성을 상실하며, 최악의 경우 마치 피가 돌지 않는 신체조직처럼 사회는 괴사상태에 빠지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필자가 언론학을 전공으로 택하고 미디어 연구자 및 언론정보학과의 교수로 재직해온 전 기간 동안 지금처럼 이런 생각에 골똘했던 적은 없었다.

 

이러한 저널리즘의 토대가 “팩트(fact)”다. 그것이 정치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건, 경제 권력에 대한 비판이건, 내지 논란을 빚고 있는 국가정책에 대한 의견제시건 저널리즘은 팩트에 기반한다. 팩트를 상실한 저널리즘은 선전·선동, 기망(欺妄), 사술(詐術)과 구별되지 않으며 그 존재의 정당성을 상실한다. 팩트야말로 저널리즘의 시작이자 끝인 것이다.

 

저널리즘이 위기를 겪고 있음은 기지의 사실이다. 현시대의 미디어가 제공하는 뉴스의 양은 희소한 몇 개의 채널을 통해 뉴스가 제공되던 매스 미디어 시대와 비교될 수 없다. 하지만 뉴스는 개선되었는가? 이제 공정하고 책임 있는 언론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 사회에서 관측되는 저널리즘 위기의 양상들, 이를테면 종이신문의 끝 모를 추락, 언론 윤리 약화, 보수-진보진영으로 갈라진 극단적 주창(advocacy) 저널리즘, 선정적인 인터넷신문과 유튜브 개인 미디어의 난립, 어뷰징, 가짜뉴스, 가짜 동영상, 댓글 조작 등은 이미 상당 기간 우리의 일상이 되어 이를 새삼 강조하는 게 생뚱맞을 정도이다.

 

스마트 혁명 내지 AI 혁명의 진전으로 미디어가 더욱 많아지고 소통의 양이 증가하며 알고리즘 내지 로봇이 인간대신 기사를 쓰고 기사배열을 담당한다고 해서 이런 상황이 달라질 것인가?

 

당연한 얘기지만, 디지털 전환은 저절로 이상적인 미디어 시스템, 그리고 가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뉴스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끝없이 확장되는 미디어, 그리고 이를 통해 나타나는 새로운 사회적 소통행위들은 가능성만큼이나 위험을 내포한다.

 

정치적 독립성, 객관성, 다양성, 공정성, 완성도와 같은 저널리즘의 기본가치들을 지켜가는 일은 미디어 폭발 시대에 한층 어렵고도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다. 그 한 중심에 팩트가 있다. 정리하면,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역사의 흐름이 된 디지털 소통혁명은 일시적인 필요나 유행이 아닌 본질적이고도 핵심적인 요소로써 저널리즘에 있어서의 팩트의 강화를 요청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저널리즘의 토대인 팩트에 주목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오히려 “왜 이제서”라는 의아함을 갖게 할 정도다. 미디어와 시민사회가 주축이 되어 끝없이 확장된 미디어 생태계 안에서 실천되는 저널리즘을 건강하게 지켜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파에 휩쓸리는 일 없이 불편부당하고 공정하게 허위조작 정보를 감시하고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방식으로 그 진실 여부를 검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독립 시민단체인 “바른언론 시민행동”이 창립되고 그 자매지로 Truth Guardian이 창간된 것은 반갑기 그지없는 일이다. 어지럽게 격동하는 깜깜한 미디어 전환기의 바다에 우리 사회의 저널리즘이 나아갈 한 줄기 빛을 밝히는 등대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해 마지않는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