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전해져 오는 말 가운데, 중구삭금(衆口鑠金)이란 말이 있다. 중국 춘추시대 어느 일화에서 유래된 말인데, 풀이하자면, “무리의 입은 쇠도 녹인다”는 뜻이다.
춘추시대 주나라의 24대 경왕 때 얘기다. 왕은 백성과 충신의 반대를 무릅쓰고 화폐 개혁을 단행하여 새 동전을 주조했다. 구 동전은 녹여서 거대한 종을 만들었다. 그 비용이 백성들에게 전가될뿐더러 종을 만드느라 백성들의 원성만 높아진 셈이다. 그때 반대했던 신하가 한 말이, “故諺曰 衆心成城 衆口鑠金(고언왈, 중심성성 중구삭금)”이었다. “옛사람들 말에 따르면, 무릇 많은 백성의 마음이 모이면 견고한 성도 이루고, 또 백성들의 말이 많아지면 쇠도 녹인다고 했습니다”라고 이해할 수 있다.
흔히 이 말은 대중 여론의 무서움을 상징하는 경구로 사용된다. 하지만 달리 이해하면, 대중 여론이 오도된 사실에 움직여서, 그릇된 말이 퍼져 나가는 경우에 대한 경고로도 볼 수 있다. 오도된 사실이란 다름 아닌 ‘가짜 뉴스’를 이름이다.
가짜 뉴스로 인해 이익을 누리는 자들이 있다면 공공의 적임이 당연하다. 그들은 가짜 뉴스로 대중을 선동해서 특정 개인의, 특정 집단의, 심지어 정부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특히 기업 같은 거대 집단 혹은 정부는 가짜 뉴스 한 방의 일격에 무너지기보다는 가짜 뉴스가 입에서 입을 타고 전파되면서 서서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가라앉으면서 침몰해 버리고 만다. 그 가짜 뉴스의 출발은 대체로 특정 개인에 대한 악의적인 험담에서 비롯된다.
정치로 말하자면, 이런 가짜 뉴스의 황금어장이라 할 만하다. 혁명 전야, 제정 러시아 말기 라스푸틴에 대한 가짜 뉴스는 당시 러시아 백성들의 황실에 대한 분노를 자극하는데 더 없이 유용했다. (지금은 제정 말기 황실과 당시 지배층의 태만에 대한 일종의 알리바이를 제공해주고 있음도 기억해 둘 만하다) 마리 앙투아네트에 얽힌 가짜 뉴스들 또한 프랑스 혁명의 불길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급기야 혁명적 전복이 이루어졌다.
우리 몸은 저항력에 따라서 같은 병균에 노출되더라도 개체마다 감염 여부, 회복 여부가 다르다. 사람의 인지 체계에도 일종의 저항력이 존재한다고 한다. 예컨대, 가짜 뉴스를 접하고 이를 그냥 믿어버리는 사람(귀가 얇아서 그런가?)과 의심하고 따져보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전자는 후자에 비해 외부에서 유입된 정보를 처리하는 변수가 적어서라는 얘기다. 후자는 외부 유입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서, 과연? 왜? 라는 의문과 동시에 시간적 전후와 공간적 주변의 맥락적 이해 기제가 작동하는데 익숙하다.
여기서 잠깐, 여러분은 다음 세 가지 유형에서 자유로운가? 각자 생각해 보기 바란다.
“Haters spread rumors, Fools spread them, and Idiots believe them.” 증오자가 되어 가짜 뉴스를 유포한 적은 없는지, 혹은 생각 없이 바보처럼 남에게 전하거나, 그대로 천치인 양 믿어버리는 편은 아닌지, 곰곰이 돌이켜보길 바란다. 바보나 천치는 우리 자신일 수 있다. 우리 자신이 정치사회 성숙에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아닌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질병의 유행에는 언제나 열악한 위생과 영양 상태가 수반한다. 상대적으로 위생과 영양이 더 나은 편은 질병의 화마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개인도 인지 체계의 성숙 정도에 따라 가짜 뉴스와 같은 오류 신호를 거를 수 있는 역량이 제각각 다르다. 사회는 왜 아니겠는가. 흔히 선진사회 혹은 성숙한 사회, 열린 사회라고 부르는 공동체들은 하나 같이 구성원들의 인지 체계가 고루고루 성숙한 사회를 말한다. 성숙한 개인이 성숙한 사회를 이룬다.
대한민국은 적어도 신체적으로는 가장 왕성한 20대 초반 정도의 국력을 자랑하기에 이르렀다. 웬만한 경제지표는 전 세계 10위권을 오르내린다. 반면에 도덕 감수성, 부정부패, 준법정신, 민주 공화 시민의식 등등에서는 경제력에 비해 한참 모자라는 형편이다.
더 나아지려는 출발은 당연히 구성원 개인으로부터 시작되어야 마땅하다. 개개인의 인지 체계가 성숙해짐에 따라 결국 국가 공동체가 상승하는 것 아니겠나. 가짜 뉴스는 자기 스스로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사람에게는 무력한 법이다.
“나 자신 스스로가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한 뜬소문을 굳이 믿을 필요는 없다”
/스티븐 킹의 소설,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이지수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