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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칼럼

[김대호 칼럼] 위대한 가치와 비전을 위한 투쟁이 보수 혁신의 알파와 오메가!

19세기말 보수는 혁명적 변혁을 요구하며 새 문명을 적극 수용. 1987년 이후 36년간 대한민국의 발전 동력이 쇠락. 보수는 비전과 당면 투쟁 과제를 통해 정체성을 확립해야.

 

 ▲'보수'의 불편?...조선의 근대화 문명화 세력은 '진보 우파'

 자신의 정체성을 보수 우파 자유 애국 주류 등으로 표현하는 시민이나 정치인 중에 ‘보수(保守)’라는 이름을 불편해 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우파 자유 애국 등을 불편해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특히 ‘자유 우파’라는 표현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대중적 확산은 더디다. ‘보수’라는 말을 불편해 하는 것은 국어사전의 정의(定義)와 어감 때문이다. 사전에는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며 유지하려 함’이라고 되어 있다. 대체로 보수는 수구·기득권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또 하나 불편해 하는 이유는 ‘보수’의 본산 영국과 판이한 한국의 역사 때문이다. 지난 150년 동안 한반도에는 미국 유럽 일본 러시아(소련) 등으로부터 새로운 문명이 밀물처럼 밀어닥쳤다. 급진적 혁명적 변화와 개혁이 시대적 요구였고, 수구(위정척사)파를 제외한 대부분의 정치세력은 이 요구를 받아안았다. 19세기 이전에 문명국 임을 자부하는 나라 중에서 19세기 말 기준으로 가장 낙후한 나라, 그래서 보수할 체제 제도 전통 관습 종교 등이 가장 적은 나라가 조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개항 이후 거의 모든 근대화 서구화 문명화 세력은 사전적 정의로 보면 '진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구상에서 진보(進步), 즉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함’의 모범 내지 선봉을 딱 한 나라만 꼽는다면 한국이 아닐까 한다. 150년간 한반도를 끌어온 정치 세력은 새로운 문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진보 우파'와 '진보 좌파' 뿐이라고 보아야 한다. 진보 우파가 바로 보수 자유 애국 주류로 정체성을 표현하는 정치세력이다. 진보 좌파의 정통 내지 원형은 바로 북한과 남한의 친북 정당이다.

 

▲영국의 보수주의

 영국의 보수주의는 프랑스 혁명(1789년)의 엄청난 패악을 목격한 에드먼드 버크(1729~1797) 등에 의해 정립되었다. 19세기와 20세기에는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우익 파시즘(전체주의), 68혁명 사조 등 전통적 질서 체제 문화 가족 종교 등을 파괴하려는 급진적 혁명적 사조와 투쟁하면서 영미 보수주의의 철학 가치 정책이 체계화되었다. 철학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보수주의는 원래 인간의 근원적인 도덕적, 지적 불완전성을 인정해 이상적 설계에 기초한 급격한 변화에 반대할 뿐 자생적 점진적 변화에 반대하지 않으며, 고유의 확정된 설계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수용력이 큰 이념이라 할 수 있다.”(『보수의 재구성』, 박형준·권기돈, 56쪽)

 

▲한국의 보수

 1945~1953년 건국 전쟁을 거치면서 진보의 정통을 자처하는 사회주의 인민민주주의 세력이 궤멸된 이후, 1980년대 말까지 대한민국 체제를 위협하는 세력은 국내에 없었다. 조봉암의 진보당은 대한민국 헌정질서 하에서 서구식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했다. 4.19 이후 잔존 세력은 ‘혁신계’라는 이름으로 깃발을 들었지만 당시 여당이나 야당(민주당)은 이들과 거리를 두었다.

 

 2000년 창당된 민주노동당은, 2004년 지역구 2명과 비례대표 8명(비례정당 득표율 13%)으로 원내 진출하면서 ‘진보 정당’임을 과시하였다. 김대중은 자신의 정체성을 진보라는 말보다 ‘온건 중도 개혁’ 혹은 ‘중도 보수’로 표현했다. 하지만 노무현은 정부 여당(열린우리당)의 노선을 ‘진보’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비슷한 시기 민주당 운동권 출신 의원들의 정파(486 진보행동 등)도 ‘진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2010년대 중반부터는 언론들은 당시 범여권(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을 보수, 범야권을 진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국힘당 전신 정당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보수’라는 말로 표현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3당 합당을 ‘보수 대연합’으로 부르면서다. 1987년 이후 재야 운동권의 급진적 좌익적 친북적 움직임(노동운동, 통일운동 등)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체제 위협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이때는 자칭(보수)과 타칭이 같았다.

 

 역사적으로 ‘보수’라는 말이 대중적 매력을 형성하는 경우는 다수가 신뢰하는 질서 체제 문화 가족 종교 등에 대한 거센 공격이 가해질 때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 이전 대한민국 체제에 대한 주된 공격자였던 사회주의 인민민주의 연북통일 운동권 세력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강성 노조들도 생산수단의 국유화나 노동자 자주 관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기존 체제 하에서 (생산성을 훨씬 상회하는) 높은 임금과 안정된 고용과 일자리 세습을 바랄 뿐이다. 현재 기존 질서에 대한 주된 공격자는 68혁명 사조의 변종인 급진 페미니즘(PC주의), 환경생태 제일주의, 성소수자에 대한 과도한 존중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예외없이 종교와 전통과 가족을 공격한다.

 

▲한국 보수의 주적은 운동권에서 비롯된 포퓰리즘과 약탈주의 

 이들은 한국에서도 세를 불리고는 있지만, 아직은 보수 주류 우파의 주적 반열에 올라서지 못했다고 보아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통합을 위협하는 주적은 포퓰리즘과 약탈주의(지대추구)이다. 이는 1987년 이후 재야 운동권이 정부와 민주당을 장악하면서 확산한 철학 가치 제도 정책 문화와 리더십에 뿌리를 두고 있다. 물론 이들을 견제할 보수 정치세력의 무능과 부실에 크게 힘입고 있다. 1987년 이후 점점 강성해진 운동권 정치세력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민주화의 이름으로 국가 시장 사회 전반에 대한 조정 통제 기능을 허문 것이다. 둘째, 기본권 상향(OECD평균 수준 도달)과 약자 보호의 이름으로 자유와 책임, 권리와 의무, 혜택과 부담, 이익과 위험 등 가치 간 조화와 균형을 잡아주던 제도적 이념적 문화적 장치를 허문 것이다. 셋째, 역사정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의 토대이자 준거인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허문 것이다. 넷째, 우물 안 개구리식 국제 인식에 따라 동맹보다 민족의 이름 혹은 국가의 자주 자존 실리(안미경중)의 이름으로 대외 관계를 허문 것이다.  

 

▲1987년 이후 36년간 한국의 발전 동력이 쇠잔

 지금 대한민국은 총체적으로 쇠락하고 퇴행하고 수축되고 있다. 3류 국가의 길에 들어섰다. 주력산업 인구구조 재정구조 복지시스템 사법시스템 가족공동체 기업가정신 직업윤리 근로윤리 시민종교 정치문화 등 모든 것이 퇴행하고 있다. 건국 산업화 민주화가 조선화 퇴행화 3류화 수축화를 거쳐 국가 자살로 내달리고 있다.

 

 5.16 군사혁명은 1공화국 말기의 가난과 부패, 정치적 혼돈과 사회적 무기력을 좌시할 수 없다는 젊은 군인들의 분노에서 시작되었다. 지금 한국 정치와 국힘당을 환골탈태시킬 정치 혁명은 총체적 퇴행과 침체, 합법적 약탈(지대추구)을 비롯해 정치 사회적 무기력에 대한 분노와 위기의식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위대한 나라가 망가지는 것을 앉아서 두고 앉아서 볼 수 없다는 절규와 포효가 보수 혁신의 에너지요, 소명이 되어야 한다. 

 

 보수가 자신을 부르는 이름은 보수 외에도 주류, 우파, 자유, 애국 등이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이름은 보수다. 미국 영국 프랑스 한국의 주류 지배적인 컨센서스를 도식화 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의 경우 1987년 이후 2023년까지 36년은 민주화의 이름으로 한강의 기적을 만든 발전 동력을 소진하고, 발전 체제를 해체하는 과정이었다. 대한민국이 자살하는 과정이었다. 1987년 컨센서스는 민주공화국의 작동 발전 조건, 즉 세계와 더불어 공존 공영 가능하고, 경제적으로 번영 가능하고, 사회적으로 통합 가능하고, 환경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가치 이념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한강의 기적’을 창조한 기존 체제에 대한 부정 반대 파괴로 일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보수 혁신은 위대한 소명과 비전을 위해 싸운다는 정체성 확립부터

 보수 혁신(환골탈태)의 관건은 첫째 담론, 둘째 담론 이론 경세가, 셋째 정치 리더십이다. 담론의 핵심은 정체성이다. 국민과 지지층이 보수를 누구로 생각하는지다. 정체성은 무엇(가치)을 위해, 또 누구(세대 계층 직업 지역 등)를 위해 무엇(대립물)과 싸워 왔고, 싸우는지가 핵심이다. 이로부터 ‘지금’ ‘여기’의 보수주의가 나온다.

 

 정체성은 정치세력의 비전과 이를 뒷받침하는 당면 투쟁과제와 감동적인 서사로부터 나온다. 당면 투쟁 과제는 시대정신과 시대적 소명에서 나온다. 역사와 현실에 대한 거시적 통찰이 시대정신이고, 시대의 아우성을 듣는 귀를 가진 정치인의 포효(사자후)가 시대적 소명이다. 이 핵심은 투쟁과제다. 보수의 외연 확장이나 연대연합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지만, 지금은 보수의 자기 서사와 정체성 확립이 먼저다.

 

 위대한 가치 비전을 위해 싸우는 정당이라는 자의식 내지 정체성에서 소명의식과 긍지 자부심이 나온다. 동시에 대동단결 기풍, 동지의식, 불굴의 투지 근성과 선전선동(정무)과 보수우파운동 생태계 중시 문화도 나온다. 보수 혁신의 알파요 오메가는 정체성 정립이다.(필자=사회디자인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