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현재, 대미 관세 전선은 여전히 요동치고 있다. 과잉생산을 겨냥한 무역법 301조에 따른 조사 결과 발표가 임박해 있고, 반도체에 대한 232조 관세 부과도 예고된 상태다. 대미 투자 1호 프로젝트로 텍사스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가 사실상 확정돼 이행 단계로 넘어갔지만, 미국의 후속 관세 조치에서 한미가 합의한 '15% 안전장치'가 실제로 작동할지는 아직 검증 중이다. 관세 협상이 마무리됐다는 정부의 설명과 달리, 현장의 체감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 시점에서 두 숫자를 나란히 놓아야 한다. 0%와 15%다. 한미 FTA 체제에서 한국산 자동차를 비롯한 주요 수출품이 미국 시장에서 내던 관세율과 지금의 관세율이다. 2025년 10월 경주 APEC 한미 관세 협상의 결과로, 당초 트럼프가 요구하던 25%를 15%로 낮췄다. 정부는 이것을 협상 성과라고 설명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협상의 성과와 협상의 성공은 다른 말이다. 출발점이 0%였다는 사실을 외면하면 이 협상의 전체 비용을 제대로 계산할 수 없다.
성과와 성공은 다른 말이다
한미 관세 협상에서 두 가지 사실은 동시에 존재한다. '25%가 될 뻔한 것을 15%로 낮췄다'는 것이 첫 번째 사실이다. 협상 과정의 성과다. '0%였던 관세가 15%가 됐다'는 것이 두 번째 사실이다. 한국 기업이 부담하게 된 구조적 비용이다. 정부는 첫 번째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나 국민과 기업은 두 번째 사실도 물어야 한다.
한국이 얻은 것을 정리하면, 상호관세 15%, 자동차 관세 15%, 반도체는 주요 경쟁국 대비 불리하지 않은 대우 원칙이다. 정부는 일본·EU와 동일한 경쟁 여건을 확보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모두가 나빠진 상황에서 '남들만큼 나빠졌다'는 것은 위안이지 경쟁력 향상이 아니다. 과거 한국이 무관세로 일본·EU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경쟁했다면, 지금은 그 우위가 사라진 것이다.
정부가 발표해야 할 것은 단순한 '일본과 같은 수준'이 아니다. 관세율에 물류비·인건비·환율·미국 현지 생산비용까지 더한 한국 기업의 실제 경쟁 조건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협상의 성패는 상대국보다 조금 덜 잃었느냐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 경쟁력이 얼마나 보존됐느냐로 평가해야 한다.
3500억 달러 — 투자인가, 대가인가?
이번 협상에서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관세율 자체보다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다. 현금 투자 2000억 달러와 조선 협력 투자 1500억 달러로 구성되며, 외환시장 충격 완화를 위해 연간 200억 달러 한도를 설정했다. 정부는 이를 한국 기업의 미국 진출 기회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지금 이 투자의 핵심 쟁점은 규모가 아니라 상업적 타당성(commercial viability)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미국 투자 패키지의 핵심 쟁점으로 이 문제를 직접 언급했다. 투자 사업의 수익 배분, 손실 부담, 투자 수익률과 같은 세부 조건을 놓고 한미 간 이견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1호 프로젝트인 텍사스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약 200억 달러 규모)도 수익성과 투자조건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관세를 낮추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투자와 경제적 타당성이 있어서 하는 투자는 구분해야 한다. 3500억 달러라는 숫자가 한국의 국부를 늘리는 투자가 될 수도 있지만, 수익성이 낮은 사업에 자본을 배분하게 된다면 국내 산업투자를 위축시키는 비용이 될 수도 있다. 투자의 진짜 평가는 지금이 아니라 수익이 실현될 때 이루어진다.
협상은 끝나지 않았다 — 15% 방어선의 시험
타결 이후에도 관세 압박은 멈추지 않았다. 미국은 강제노동 생산품 수입금지 제도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한국에 무역법 301조에 따른 관세를 부과했고, 한국·일본·스위스에 대해서는 기존 MFN 관세와 합산해 12.5%를 넘지 않도록 하는 구조를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기존 합의의 15% 상한이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며, 미국도 기존 합의를 준수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분석에 따르면 301조 조사가 완료될 경우 한국에서만 연간 43억 달러의 관세 수입이 발생할 수 있다. 15% 방어선이 실제로 지켜질지가 지금 최대 관전 포인트다.
반도체 관세 문제가 진짜 2라운드다. 트럼프 행정부는 232조를 근거로 반도체 관세 부과를 검토 중이며, 최근에는 미국 내 생산시설 투자 여부와 관세를 연계하는 방안까지 거론되고 있다. 대만은 이미 미국 내 신규 생산시설 건설 기간 동안 232조 관세를 면제받는 틀을 확보했다. 한국이 이와 동등하거나 더 나은 조건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미국 투자를 더 늘려야 하는 압박에 직면한다.
한국 정부는 기존 합의 정신에 따라 협의를 지속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정신을 준수한다'는 표현과 '구체적인 안전장치를 확보했다'는 것은 다르다. 협상의 진짜 비용은 관세율표에만 적혀 있지 않다. 투자 조건, 기술 이전, 공급망 재편, 국내 투자 위축 가능성까지 모두 계산에 넣어야 한다.
자유무역의 가치와 한국이 가야 할 길
이 시점에서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애덤 스미스의 비교우위 원리는 지금도 유효하다. 한국이 반도체와 조선을, 미국이 소프트웨어와 금융을 잘 한다면 서로 교역하는 것이 양국 모두에게 이롭다.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핵심 동력은 자유로운 교역이었다. 경제학자 바스티아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처럼, 관세로 보호받는 특정 산업은 보이지만 그 비용을 치르는 다른 산업과 기업들은 보이지 않는다. 1930년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이 대공황을 심화시킨 것처럼 보호무역은 장기적으로 모두를 가난하게 만든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관세 대응팀'이 아니라 '통상 전략'이다. 미국의 새로운 요구가 나올 때마다 하나씩 방어하는 수동적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반도체·조선이라는 대체 불가능한 레버리지를 협상 테이블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투자를 먼저 약속하고 관세를 받는 방식이 아니라, 투자·시장접근·관세·기술협력·공급망 안정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협상해야 한다.
수출 시장 다변화도 더는 미룰 수 없다.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구조의 취약성이 이번에 확인됐다. 자동차는 미국 현지 생산을 확대해 관세 민감도를 낮추고, 반도체는 핵심 기술을 국내에 유지하면서 후공정을 다거점화해야 한다. 동남아·중동·유럽 시장 개척을 가속화하는 것, 달걀을 한 바구니에만 담아온 구조를 바꾸는 것이 관세 위기가 남긴 역설적 교훈이다.
0%에서 15%로의 이동을 성과라고만 부르는 것은 우리가 잃은 것의 무게를 외면하는 것이다. 협상의 성과와 성공은 다른 말이다. 15% 방어선이 실제로 지켜질지, 3500억 달러 투자가 진짜 수익을 낼지, 반도체 2라운드에서 대만과 동등한 조건을 받아낼지 — 이 세 가지가 이번 관세 협상의 진짜 성적표다. 관세 시대의 생존은 발표된 합의문이 아니라 실제 이행 결과로 평가받는다.
김병헌 자유시장연구원 부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