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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칼럼

[김병헌 칼럼] AI 시대의 기업가정신

올해 실리콘밸리 화두, 딥시크 아닌 AI 에이전트… AI 에이전트 고용 시대로 넘어가
YC 스타트업 60%가 AI 중심… AI 에이전트로 20명 규모 생산성을 4명이서
韓, AI가 일할 수 있는 조직 구조 만들어야… AI 에이전트 활용 사업가가 시대의 주인공

2025년 1월 딥시크 쇼크로 세계 AI 산업이 흔들렸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중국 대 미국의 대결로 읽었다. 그러나 2026년 9월 현재, 그 프레임은 이미 낡은 것이 됐다. AI 전쟁의 최전선은 국가 간 모델 경쟁이 아니라 기업 현장에서 에이전트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생산성 혁명으로 옮겨갔다. 지금 실리콘밸리에서는 '우리는 더 이상 소프트웨어를 쓰는 게 아니다. 에이전트를 고용하고 있다'는 말이 가장 자주 들린다.

 

변화의 속도는 가파르다. OpenAI는 GPT-5와 추론 특화 o3 시리즈를, Anthropic은 Claude 4.5와 Opus를, Google은 Gemini 3.7을 내놓으며 기업 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2026년 초 단 한 분기 만에 글로벌 VC 투자금의 65%가 AI 스타트업으로 흘러 들어갔다. OpenAI·Anthropic·xAI·Waymo 네 곳이 합쳐서 1,880억 달러를 유치했다. AI는 기술 트렌드가 아니라 경제 시스템의 새로운 인프라가 되고 있다.

 

AI 에이전트 시대 — 무엇이 달라졌는가?


2024년까지의 생성형 AI가 인간의 창작과 코딩을 돕는 도구였다면, 2026년의 AI 에이전트는 기업의 워크플로우와 결합해 업무를 자율적으로 완결하는 경제적 주체로 부상했다. YC(Y Combinator, 미국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의 올해 겨울 배치(Winter Batch) 스타트업 중 60%가 AI 중심이고, 그중 41.5%가 에이전트 인프라를 직접 구축하고 있다. 한 창업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 팀은 4명이지만, 실제로는 20명 규모로 일한다. 그 추가 인력은 모두 에이전트다.

 

이것은 과장이 아니다. KB라이프는 Microsoft 365 코파일럿을 전 직원 대상으로 도입해 문서 요약·회의록 작성·일정 관리를 자동화했다. 이마트는 HR FAQ 챗봇, 바이어용 농산물 시세 탐색 에이전트를 부서별로 직접 개발해 운용한다. 아모레퍼시픽은 멀티 에이전트 시스템이 전문성 있는 뷰티 상담을 제공하는 'AI 뷰티 카운슬러'를 구현했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올해를 에이전틱 AI 원년으로 공식화했다.

 

에이전트 시대는 기업가정신의 정의를 바꾼다. 과거에는 사람을 잘 채용하고 조직을 잘 운영하는 것이 경영자의 핵심 역량이었다. 이제는 어떤 에이전트를 어떻게 설계하고 배치하느냐가 경쟁력을 결정한다. YC의 오래된 슬로건 'Make something people want'는 이제 'Make something agents want'로 바뀌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딥시크 이후 — AI 경쟁의 진짜 의미


딥시크는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주는 교훈은 '중국이 무섭다'가 아니다. 핵심 교훈은 두 가지다. 첫째, 막대한 자원 없이도 세계 수준의 AI를 만들 수 있다. 둘째,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국가 지원이 아니라 기업가 한 사람의 도전이었다.

 

2026년 현재 AI 모델 경쟁에서 미국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OpenAI·Anthropic·Google이 기업 시장을 분점하며 각자의 생태계를 구축했고, 85%의 포춘 500 기업이 이미 이 플랫폼들 위에서 운영된다. 중국은 딥시크 이후 추가 모델들을 내놓고 있지만, 미국의 반도체 수출 제한으로 고성능 AI 개발에 구조적 제약을 받고 있다. 지금 세계 AI 패권은 미국이 쥐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디에 있는가? 에포크AI 통계에서 한국의 '주목할 만한 AI 모델'은 2024년 0건으로 집계됐다. 2026년 현재도 이 숫자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는 GPU 확보와 컴퓨팅 인프라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GPU는 AI 경쟁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인프라가 아니라 인재와 기업가정신이다.

 

한국 기업가에게 진짜 필요한 것


에이전트 시대에 요구되는 기업가정신은 모델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에이전트를 설계하고 배치하는 능력이다. 의료, 법률, 교육, 물류, 금융 모든 산업에서 에이전트 기반의 비즈니스 재편이 진행 중이다. 이 재편의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는 누가 더 빠르게, 더 대담하게 에이전트를 자신의 비즈니스에 통합하느냐에 달려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2~3명 규모의 팀이 에이전트 스타트업을 창업해 법률 문서 분석, 채용 인터뷰 자동화, 구매·결제 자동화 에이전트를 만들고 있다. 이것은 천재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를 발견하고, AI 도구를 활용해 해법을 만들며, 시장에서 검증하는 슘페터식 기업가정신의 현대적 버전이다. 도구가 바뀌었을 뿐, 기업가정신의 본질은 동일하다.

 

한국이 에이전트 시대에 뒤처지는 이유는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다. 시장 신호가 여전히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뛰어난 청년이 의대를 향하는 동안, 세계는 에이전트로 20명 규모의 생산성을 내는 4인 팀을 만들고 있다. 에이전트를 도구로 쓰는 사람과 에이전트를 설계하는 사람의 격차는 빠르게 벌어진다.

 

기업과 개인이 지금 해야 할 것


기업 경영자에게 지금 가장 시급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 조직에서 반복적이고 규칙 기반의 업무 중 에이전트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 업무를 에이전트가 맡으면,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두 질문에 답을 갖고 있지 않은 기업은 이미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

 

에이전트 도입의 가장 큰 장벽은 기술이 아니라 데이터 품질과 시스템 통합의 어려움이다. AI 자체는 이미 충분히 강력하다. 문제는 AI가 활용할 수 있는 내부 데이터 구조와 프로세스가 갖춰져 있는가 하는 것이다. 에이전트 시대를 준비하는 것은 AI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일할 수 있는 조직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다. AI 시대의 기업가정신은 코딩 능력이 아니다.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 에이전트를 설계하는 사고력,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드러커가 말한 지식 노동자는 스스로를 자기 기업의 CEO로 여겨야 한다. 에이전트를 거느린 1인 기업가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딥시크에서 에이전트로, AI의 전장이 바뀌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더 좋은 모델이 아니라 그 모델을 어떻게 사업에 통합하는가다. 4명이 20명의 일을 하는 시대, 에이전트를 설계하는 기업가가 이긴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GPU가 아니라 에이전트를 두려워하지 않고 활용하는 기업가다. 시장의 신호는 이미 바뀌었다. 그 신호를 읽는 사람이 다음 시대의 주인공이 된다.

 

김병헌 자유시장연구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