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 29일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처음 세상에 내놓던 날을 기억하는가? 그것은 단순한 신제품 출시가 아니었다. 전화기, 카메라, 음악 플레이어, 인터넷 브라우저를 하나로 합친 그 작은 유리판 하나는 해당 산업 및 그와 관련이 없던 산업까지 통째로 뒤흔들었다. 수십 년간 쌓아 올린 산업의 질서가 한 사람의 상상력 앞에 무너졌다.
이것을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는 일찍이 예견했다. 그는 자본주의의 본질적 동력을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라고 불렀다. 낡은 것이 무너져야 새로운 것이 선다. 그리고 그 파괴와 창조의 중심에 항상 한 사람이 서 있다고 했다. 바로 기업가(entrepreneur)다.
파괴하는 자 아닌 창조하는 자
슘페터가 말한 기업가는 단순히 사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기업가를 혁신자(innovator)로 정의했다. 신제품 개발, 새로운 생산방식 도입, 미개척 시장 진출, 새로운 원료 확보, 새로운 조직 형성 등 이 다섯 가지 혁신 중 하나라도 실행하는 사람이 기업가다. 단순히 기존 방식을 반복하는 사람은 슘페터의 눈에 기업가가 아니라 관리자(manager)일 뿐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역설이 등장한다. 창조적 파괴는 기존 산업을 무너뜨린다. 아이폰이 등장하자 노키아가 쓰러졌고, 쿠팡이 자리를 잡자 동네 마트가 흔들렸다. 밀려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재앙이지만,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더 싸고 더 좋은 상품과 서비스가 더 많은 사람에게 돌아가게 된다.
그렇다면 기업가는 파괴자인가, 창조자인가? 슘페터의 답은 명확하다. 기업가는 파괴를 목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창조를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서 낡은 것이 비켜서는 것이다. 기업가의 눈은 항상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향해 있다.
기업가정신은 특별한 사람의 전유물인가?
많은 사람들이 기업가정신을 창업자나 최고경영자(CEO)의 전유물로 여긴다. 잡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 같은 전설적 인물들을 떠올리면 기업가정신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슘페터의 정의를 따르면 기업가정신은 직위가 아니라 태도(attitude)의 문제다.
조직 안에서 기존 업무 방식의 비효율을 발견하고 새로운 프로세스를 제안하는 직원, 고객의 불편을 포착해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서비스를 만들어낸 팀장, 한계에 부딪힌 사업 모델을 과감하게 전환한 중소기업 대표 — 이들 모두 슘페터가 말한 기업가다. 기업가정신은 회사 규모나 자본금의 크기가 아니라,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움직이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흥미로운 것은 슘페터가 기업가를 경제적 동물로만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진정한 기업가의 동기로 세 가지를 꼽았다. 왕국을 세우고 싶은 꿈(the will to found a private kingdom), 정복하고 싶은 의지(the will to conquer), 그리고 창조 자체의 기쁨(the joy of creating). 돈은 결과일 뿐, 진짜 기업가는 창조하는 행위 자체에서 의미를 찾는다.
한국 사회는 왜 기업가를 존경하지 않는가?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기업가는 좀처럼 영웅 대접을 받지 못한다. 성공한 기업인은 운이 좋았거나 누군가를 착취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먼저 받는다. 실패한 기업인은 낙인이 찍히고 재기의 기회조차 좁다. 이 문화 속에서 청년들은 창업 대신 공무원 시험을 택하고, 혁신 대신 안정을 선택한다.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가장 큰 위협이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문화적 침식에서 온다고 경고했다. 기업가를 탐욕스러운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이 퍼지고, 혁신보다 규제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강해지면, 창조적 파괴의 엔진은 서서히 꺼진다. 그 결과는 정체(停滯)다.
기업가를 영웅으로 대접하는 사회는 단순히 그들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다. 실패를 용인하고, 혁신에 따르는 위험을 제도적으로 분담하며, 성공의 과실이 정당하게 보상받는다는 신뢰를 심어주는 것이다. 그것이 없는 곳에서 슘페터의 기업가는 태어나지 않는다.
기업가는 이익을 쫓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 없던 가치를 만드는 사람이다. 슘페터는 그들을 자본주의의 심장이라고 불렀다. 심장이 멈추면 몸 전체가 멈춘다. 한국 경제가 다시 뛰려면, 먼저 기업가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
김병헌 자유시장연구원 부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