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구 1000만명 이상 국가 중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벽을 넘은 나라는 2024년 국제통화기금 기준 (2024.10 전망, 달러) 미국(86,601) 네덜란드(67,984) 호주(65,966) 스웨덴(57,212) 벨기에(56,128) 독일(55,521) 캐나다(53,834) 영국(52,423) 프랑스(48,012) 그리고 지난 해 간신히 4만 달러에 올라선 이탈리아(40,286) 10개국이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서구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국가들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작년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 6624달러 11년째 3만 달러 박스권에 갇혀 있다. 구조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증거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발달해 국민들의 소득이 증가해 오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자유민주주의의 특징은 △직접·보통·비밀 선거로 국민들의 의사를 대변해 줄 선량들을 선출하고 △이들로 구성된 국회에서 대의정치를 행하고 △이처럼 구성된 입법부와 행정부 그리고 사법부의 삼권분립이 견제와 균형을 이루면서 국가를 통치하며 △입법부는 필경은 다수당과 소수당으로 구성되게 마련이므로 대화와 타협으로 입법활동을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고 △선거과정에서 정확하고 공정한 정보가 유권자들에게 전달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선거의 토대이므로 언론의 자유를 통해 공정한 언론이 정립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자유민주주의는 영국인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에서 비릇되었다. 그는 《통치론》(1689)에서 당시까지 지속되어온 ‘왕권신수설’을 부정하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생명 자유 재산권이라는 천부의 인권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천부인권설’을 주장했다. 이로써 존 로크는 현대적 의미에서 사유재산권 개념에 논리적 기초를 마련했다.
존 로크는 《통치론》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내 몸과 내 마음은 나의 것이다. 공유물에 나의 노동을 결합하면 그 공유물은 비로소 나의 사유물이 된다.” 그의 개념은 당시 왕권 체제를 부정할 정도로 충격적이고 혁명적이었다. 로크가 왕의 권위를 정면으로 부정했으니 그의 목숨은 위태로워졌고 결국 그는 제임스 2세의 탄압을 피해 네덜란드로 피신가서 위 불후의 명저를 집필했다. 하지만 그의 사상은 영국 명예혁명과 미국 독립혁명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다.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는 시민의 재산권 보호”라고 로크가 선언한 이후, 사유재산권 개념은 더욱 발전해 나갔다.
사유재산권 개념이 확립되면서 사람들은 자기 땅을 가꾸어 더 많은 식량을 산출했고 기계를 발명해서 생산력을 높였고, 재산을 불렸다. 특히 특허권을 재산권으로 가질 수 있게 됐고, 사람들은 좋은 기계를 남보다 빨리 만들고 하면서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다. 1700년대 영국의 산업혁명을 이렇게 추진되었고 그 때 발명된 증기선에 힘입어 연달아 경쟁국을 물리치면서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존 로크의 《통치론》이 발간되면서 영국에서는 행정과 입법이 나뉘어졌고 나중에 프랑스의 몽테스키외(Charles-Louis de Secondat Montesquieu, 1689~1755)가 1749년에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집필한 대작 《법의 정신》을 출간하면서 비로소 시민의 자유는 사법이 독립적이라야 보장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비로소 삼권분립이 정립되었다. 존 로크의 《통치론》이 네덜란드에서 집필된 것처럼 《법의 정신》도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프랑스에서 한 때 판매 금지되기도 했다. 자유민주주의는 이처럼 험난한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그런데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왜 자유민주주의가 발전한 나라에서 꽃을 피우게 되는가. 자본주의 시장경제란 △경제활동의 자유, △사유재산권 보장, △법치가 보장되고 △노사간 기울어지지 않은 운동장이 보장된 경제체제를 의미한다. 이러한 주장들은 당연히 자유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에서 발달할 수 밖에 없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발달해 국민들의 소득이 증가해 오고 있는 것이다. 1770년 중반 산업혁명이 발생한 영국에서 시장경제의 바이블 아담 스미스의 《자본론》이 1776년 발간된 것이 우연이 아니었다.
실제로 사유재산권이 없는 곳에선 수 많은 비극이 발생했다. 국유, 공유를 앞세운 나라들은 수천만 명이 굶어 죽는 비극에 직면했다. 모든 토지를 국유화, 집단농장화한 중국에선 1958년부터 1962년까지 곡물 생산량이 급감해 최소 30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집단농장에선 각자가 열심히 일할 인센티브가 없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1996년 러시아 전체 농지의 약 5%가 사유화됐는데 이곳에서 생산된 농산물 생산량이 러시아 전체 농산물 산출량의 36%를 차지했다. 집단농장에선 아무도 열심히 농사를 짓지 않았다. 내 것이 아니니까 열심히 일하지 않은 것이다. 국유화의 비극이다.
1989년 동유럽이 붕괴되고 1991년 구소련연방이 붕괴되면서 1917년 레닌의 러시아혁명 이후 오랫동안 지속되어 오던 좌우간 대립이 종식되었다는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1989)이 출간되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권위주의 시대가 돌아오고 있다. 시진핑 푸틴 등이다. 인도 터키 등도 뒤따르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등 글로벌 경제위기를 겪어면서 경기가 침체하고 장기적인 경기침체는 좌파 포퓰리스트들의 득세 배경이 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권위주의, 심할 경우에는 전체주의화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정치체제가 등장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가 위협받으면 자연히 자유민주주의 토양 위에서 발전해온 자본주의 시장경제도 위험해 진다. 최근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위기》 (The Crisis of Democratic Capitalism)를 출간한 영국 저널리스트 마틴 울프(Martin Wolf)는 “자본주의 체제는 민주주의와의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통해서만 번영을 구가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서구사회가 채택한 체제를 ’민주주의적 자본주의‘(Democratic Capitalism)라고 명명하고 20세기 후반부터 평화와 번영을 이루어 낸 것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 노벨경제학자 대런 에스모글루가 근간 《좁은 회랑》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둘의 결합은 힘겨운 결혼생활이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권위주의 권력은 많은 이점을 가져다 주는 특권층을 형성하게 되고 이러한 특권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마침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에 가장 명백한 위협은 정치와 정의를 모두 돈으로 사서 법을 만들고 법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나 기관이 전능한 주체가 되는 위협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위협을 제거하려면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가 새로운 균형을 찾기 위한 정부의 분권화를 추진하고 포퓰리즘에 의해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것을 경계하는 한편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재구축하기 위한 새로운 뉴딜 (New Newdeal)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마틴 울프는 세계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두 바퀴로 가는 자전거에 올라타 있으므로 자본주의를 지속하려면 민주주의의 페달을 계속 밟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경쟁적인 시장경제 체제에서 민주주의도 꽃을 피운다는 점이 역사적 교훈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현재 세계는 많은 나라가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 국가이거나 권위주의 국가이거나 심지어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독재국가이므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들 간의 동맹은 21세기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국민의 대표를 뽑는 선거의 부정에 대한 여론이 비등하고 있고 언론도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가 장악해 언론의 자유도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특정당이 장악한 입법부는 민주주의의 꽃인 대화와 타협은 찾아보기 힘들고 일방적인 입법독재에 가까운 전횡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 자유를 지켜주어야 할 마지막 보루인 사법부도 특정 파벌이 지배하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마저 입법부의 탄핵소추에 이어 헌재에서 탄핵되었다.
이처럼 자유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가운데 설상가상 경제도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침체가 지속되고 있다. 포퓰리즘의 준동 토대가 무르익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로 도약할 것인가, 아니면 위협받고 있는 자유민주주의가 훼손되어 시장경제도 약화되면서 성장동력이 약화되어 추락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다. 대한민국은 세계은행이 지난해 ’성장의 슈퍼스타‘로 칭송할 만큼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선진국 수준까지 성장해 왔다. 여기서 도약하지 않고 성장동력이 약화되어 추락할 경우 자라나는 후손들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마틴 울프의 지적처럼 시장경제로 도약하려면 자유민주주의의 토대부터 튼튼히 하는 일이 중요하다.
오정근 바른언론시민행동 공동 대표
자유시장연구원장·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