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의 엔터 비평] 청담부부의 혹한기 훈련

  • 등록 2024.12.27 17:3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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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과 이정재, 혼외자 논란과 오징어게임2 개봉으로 희비교차

 

이정재, 정우성은 청담부부로 불리며 30년간 정상의 자리를 지키는 비혼 남자배우들이다.

 

침체기와 혹평도 있었지만, 20대에서 50대가 될 때까지 잊히지 않고 현재에도 건재하는 몇 안 되는 오빠 같은 아저씨 남배우로 인정받고 있다. 그들과 함께 전성기를 보냈던 꽃미남 배우들이 대부분 나이가 들며 캐스팅이 안 돼 출연작이 없는 현실을 감안하면 두 배우의 존재는 더욱 독보적이다.

 

한때 동성애자가 아니냐는 잘못된 소문이 있을 만큼 한 건물에 따로 거주하며, 주거와 사업을 함께해 청담부부라는 애칭이 붙었다. 그만큼 끈끈하고 오랜 브로맨스를 보여준 이 남남커플이 올해 겨울 재평가되며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 청춘의 아이콘이기만 했던 두 남자의 배우성장기

 

90년대 영화 ‘태양은 없다’에서 정우성과 이정재는 그냥 잘 생기거나 몸 좋은 남자였다. 지금과 달리 울룩불룩한 근육질 남자가 소위 ‘몸짱’으로 불리던 시절, 이정재는 반항아 같은 제임스딘의 이미지로 모델 같은 배우로 여성팬을 끌어모았다.

 

연기 수업이 필요했던 때에 당시 국민드라마 ‘모래시계’의 과묵한 보디가드로 인기를 끄는 탁월한 선택을 한다. 그 때 신인이었기에 작품을 고를 수 있는 권한이 많지는 않았겠지만, 어눌한 대사와 불안한 연기 대신 묵언수행처럼 입 다물고 한 여자만을 향해 강렬한 눈빛을 쏘아대는 역할이 신인배우 이정재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역이었고 그래서 라이징스타가 됐다.
 

처음엔 90년대 오렌지족의 이미지로 인기는 끌었으나 배우로서 필요한 건 외모만은 아니었기에 침체기도 있었지만, 영화 ‘신세계’, ‘관상’ 등으로 오빠 아닌 아저씨 배우로도 손색없다는 인식을 심는다.

 

이런 이정재를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게임’은 50대의 월드스타로 등극시킨다. ‘오징어게임’은 국내용 배우였던 이정재를 아시아 최초로 에미상 주연상을 받은 배우로 만들었다. 영어권 드라마에 출연한 적 없던 토종배우 이정재를 스타워즈 스핀오프 드라마에 출연시킨 디즈니플러스의 과감한 선택도 ‘오징어게임’의 성공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오징어게임’의 성공에는 함께 에미상을 수상했던 황동혁 감독의 각본과 연출이 주효했지만, 오빠 이미지를 버리고 촌스러운 헤어스타일과 시술 안 받은 칙칙한 피부로 출연했던 이정재의 용기도 빛을 발했다. 실패한 인생을 사는 이혼남 역할인데 시상식에서 보던 관리 잘 받은 이정재의 이미지는 어울리지 않는다. 배역에 녹아드는 연기로 오징어게임을 성공시키고 처음 연출한 ‘헌트’도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으며 월드스타 이정재의 전성기가 세계적으로 열리기도 했다. 이후 개봉한 정우성의 첫 연출작 ‘보호자’가 싸늘한 반응으로 끝난 것과 대비되기도 했다. 그렇게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게임’은 넷플릭스와 함께 이정재의 대표작이 됐고, 3년 만에 오징어게임 시즌2가 공개됐다.

 

○ 람보로 돌아온 오징어

 

오징어게임이 예상을 뛰어넘어 세계적인 흥행과 강력한 팬덤을 만들어내자, 넷플릭스는 시즌 2에 거는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전 세계 주요도시에서 오징어게임 속 캐릭터들이 출몰하며 3년 전 흥행작의 귀환을 알렸다. 전편의 서사를 이어가면서,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 시대의 힘들고 지친 인생군상이 등장한다. 공통점은 감당할 수 없는 빚이 있다는 것이지만 빚을 지게 된 경위는 각각이 다른 여러 인물을 통해 여러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처럼 새롭게 등장하는 여러 배역이 나름의 인생사를 보여주는 동안 오히려 낯선 건 주인공 성기훈의 변신이다. 전편에서 소극적이고 모자라던 주인공은 456억의 상금을 오징어게임을 주최하는 무리들을 밝혀내는데 사용하며 시간을 보낸다. 타인의 죽음으로 막대한 부를 축척했다는 자괴감이 주인공을 성숙하게 만들었다는 동기부여는 설득력이 있으나, 지나친 인물변화로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보여진다. 그만큼 괴로움도 크고 생각도 많아 상금을 개인을 위해 쓰기보다 인명살상게임을 주최하는 가진 자들에 대한 복수의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정의롭다. 하지만 돈을 위해 게임에 뛰어들었던 주인공이 정의실현을 위해 돈을 쓴다는 것부터 부자연스럽다. 막대한 상금을 사망한 다른 참여자의 가족들을 위해 사용했던 시즌1은 최소한의 양심 때문이었다고해도, 시즌2 시작부터 겁쟁이 주인공이 총기훈련을 하고 급기야  용병까지 고용해 주최측과의 전쟁을 벌이는 전개는 어딘지 영웅담으로 흐르는 것 같다. 더구나 특수부대원이었던 용병들은 진입조차 못 한재, 주인공이 총을 잡고 사람들을 이끌며 총격전을 벌이는 마지막은 인생의 페이소스를 담은 전작에 비해 블록버스터로 방향을 전향하는 건 아닌가라는 의심마저 들게한다.

 

80년대 미국영화 람보처럼 적진을 향해 돌진하지만 액션이라기엔 소박하고, 게임에 이용된 서민의 분노폭발 드라마라기엔 현실적이지 못하다.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특전사였던 트렌스젠더와 해병대 복무자도 투입하지만 선두를 이끄는 대장은 전편의 ‘찌질이’ 성기훈이다.


○ 비상계엄 발표의 피해자는 전 국민, 최대 수혜자는?

 

탄핵정국의 혼란이 일상을 짖누른 상태로 대한민국은 2024년의 겨울을 보내고 있다. 전 국민에게 피해를 안겨 준 비상계엄이었지만 혜택을 본 사람이 있다면 정우성이라는 농담 만큼 그의 혼외자 논란이 탄핵사태로 묻혀가고 있다.

 

한 배우가 한 국가의 가족관과 결혼의 의미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흩어놓기만 하고 주워 담지 못한 채 탄핵 덕분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분위기다.

 

이정재와 함께 30여 년간 정상급 배우였던 정우성이 오징어게임2로 다시 한번 월드스타를 노리는 이정재와 달리, 침몰할지 모르는 위기에 빠졌다. 아직은 침몰인지 회생할지 알 수 없는 난파선인 정우성이 흔들어놓은 한국의 결혼관과 가족관이 결론이 나지 않은 채 25년을 맞고 있다.

 

○ 난민은 자식처럼, 자식은 난민처럼


정우성의 혼외자 출산은 충격적이었다. 그의 배우인생에서 유일한 공개 연인이었던 이지아의 이혼만큼이나 충격적이었는데 이후 전개는 더욱 놀라웠다. 지난 2011년 정우성은 처음으로 동료 배우 이지아와의 교제를 인정했다. 당시 정우성이 직접 인정해 화제성도 컸고 솔직한 고백에 응원도 이어졌다. 그런데 연인인 이지아가 다른 남자와의 교제도 결혼도 아닌 이혼이 발표되며 그 여파는 정우성에게까지 미쳤다. 미혼으로 알려졌던 여배우가 결혼도 아닌 이미 결혼했었고 이혼한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정우성이라는 정상급 배우와 공개 연애 중이었기에 파장이 컸다. 정우성에게 이 보다 더한 충격은 없을 것 처럼 세상이 들썩였는데 2024년 이번에는 정우성이 주체적인 입장에서 세상을 뒤흔들었다.

 

아무 연결고리가 없던 잊힌 듯한 패션모델과의 출산을 인정하며 정우성은 이슈issue의 피해자에서 가십gossip의 생산자로 올해 연예계를 집어삼켰다. 아이가 출생했음에도 결혼은 하지 않는다는 발표도 문제였지만, 교제한 적도 없다는 지나치게 솔직한 고백으로 대중들 스스로 눈을 의심하게 했다. 소위 ‘속도위반’으로 표현되는 혼전임신이 세월의 흐름과 함께 손가락질의 대상이 안 된 것도 얼마되지 않았는데, 아이가 생겨도 또 아이를 낳아도 결혼은 하지 않고 아버지로서 역할만 하겠다는 정우성을 통해 한국 사회는 전통적 가족 형태를 부정해야 하는 질문을 안았다. ‘아버지-어머니-자식’이 아닌 어머니가 빠진 ‘아버지-자식’의 부자 관계만 존재하면 그게 가족인지, 부자 관계가 가족관계가 아니라면 뭐로 정의해야 할지 세상은 답을 정하지 못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아이를 낳았지만, 교제한 적도 없었다는 헐리우드식 고백은 여성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사귀지 않고 육체관계만으로 자식을 낳았다는 사실을 굳이 강조하며 자식 때문에 애정없는 결혼은 안 한다는 당당함에 대중은 정우성이라는 사람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더구나 정우성은 UN난민기구 대사로 난민 어린이의 수용을 주장하던 인물 아닌가. 학력 콤플렉스를 지식인 코스프레로 해소한다는 일부의 조롱에도 사회문제에 당당히 제 목소리를 내던 정우성의 이해 불가 행보는 여러 의문을 자아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 소신 발언하며 나섰던 정우성이 윤대통령 탄핵정국에선 개인신상 문제로 조용히 근신 중인 것도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 미래진행형인 혼외자 문제


원나잇스탠드 One Night Stand 라는 용어는 그릇된 성문화를 비난하는 단어로 수용되었다가 현재는 하룻밤 육체관계를 뜻하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정우성은 일정 기간 육체관계만 유지했고 이로 인해 출산했음을 세상에 밝혔다. ‘남편’은 안 하겠지만 ‘아빠’는 하겠다는 정우성에게 대중은 그게 가능하냐고 묻고 있다. 가족 안에서 아버지의 역할에 우리는 익숙한데, 한집에 살지 않고 엄마와 결혼도 하지 않았으며 엄마를 사랑한 적도 없는 아빠가 아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아빠의 역할인지 묻고 있다. 정우성 스스로 밝히진 않지만, 양육비 등의 금전적 지원 외에 지금까지의 통상적인 아빠로서 할 수 있는 건 없지 않냐는 질문에 정우성은 아직 답하지 않았다. 아마 정우성 자신도 아직 답을 찾지는 못했을 것이다. 돈만 주면 아빠냐는 비난에 돈만 주는 건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그것 외에 엄마와 사는 아들에게 혼인 관계도 없는 ‘생물학적’아빠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정서적’, ‘감정적’ 아빠와 살며 교감하는 모습을 이상적인 가족으로 생각하는 한국인에게 정우성은 가족 기준의 변화라는 어려운 숙제를 던졌다.

 

이러는 사이 정우성의 연인으로 추측되는 여성과 포옹한 채 찍은 사진이 공개되고, 장기간 유부녀 또는 이혼녀와 교제 중이라는 소문도 퍼졌다. 정우성의 공식 계정으로 여러 여성에게 SNS로 보낸 메시지도 공개되어 30년차 배우의 중후함을 한없이 가볍게 만들었다.

 

주목할 점은 정우성도 문가비도 아닌 아직 갓난아기인 자식이다. 한국의 첫 ‘공식 혼외자’가 된 아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인생에서 안게 될 부담은 상상 이상이다. 사랑해서 결혼한 부모가 사랑이 식어 이혼해도 상처받는 게 자식인데, 사랑한 적 없는 엄마와 결혼도 하지 않고 그저 육체관계만 가졌던 아빠를 이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평생 유명 배우였기에 돈 많은 생물학적 아빠가 좋을 수도 있지만, 애정 없는 정사(情事)의 결과로 시작된 인생임을 세상에 떠벌린 정자 제공자가 부자라고 해서 무조건 좋아할 수 있을까. 

 

세상이 바뀌었어도 한국이 유럽은 아니고, 충무로가 헐리우드도 아니다. 성경험 연령이 낮아지고 혼전 성관계가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됐다고 해서, 유명인의 애정 없는 육체관계를 당연시할 만큼 한국인들이 개인의 성욕에 대해 관대하지도 않다. 

 

윤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고, 장갑차가 서울 도심을 달렸는데, 8년 전 “박근혜 나와”를 외쳤던 정우성은 왜 아무 말도 없을까. 천만영화 ‘서울의 봄’의 이태신 장군처럼 정의롭고 사명감 넘치는 배우를 대중들이 바라는 건 아니다. 다만 정우성이 말하는 아버지의 책임이 우리가 알던 아버지의 책임과 어떻게 다른 건지 묻고 있다. 

 

○ 혹한을 지나 청담부부에게 봄이 오길

 

오징어게임2는 호평은 받을 수는 있지만 시즌1 만큼의 화려한 성공은 예상하기 어렵다. 대마초 전력이 있던 최승현의 캐스팅과 과잉 연기 논란 등 악재가 예상됨에도 밀어붙일 수 있었던 건 시즌1의 성공 때문이었지만 이제 평가의 시간이 됐다. ‘더글로리’처럼 나눠서 공개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시즌2는 시즌3의 빌드업처럼 느껴진다. 여러 배역의 인생이 펼쳐졌지만 마무리된 이야기는 없으며, 주인공의 게임주최자를 향한 분노도 결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끝났다. 실제 시즌3도 함께 제작됐는데 시즌2는 시즌3의 화려한 성공을 위한 중간단계로 받아들이는 게, 몇 년을 기다린 오징어게임의 팬들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줄 것 같다.

 

혼외자로 이번 겨울이 길어질 것으로 예상됐던 정우성과 달리 오징어게임2로 빨리 봄을 맞을 줄 알았던 이정재의 겨울도 길어질 수 있을 것 같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 공개된 오징어게임2가 하루 늦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수 없는 건 단순히 하루 늦어서가 아니라 선물이 부실해서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즌3로 시즌1의 영광을 이어갈 것임을 기대하며 다시 한번 오징어게임의 세계적 흥행을 기원한다.

 

김민 전문기자 theMediaS@naver.com

 
관리자 기자 meadowurch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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