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계엄 사태가 한 중요한 여파 중 하나는 일부 세력이 주장했던 부정선거 의혹이 공론의 장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계엄군이 선거관리위원회에 계엄 선포 즉시 진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네티즌들은 그 이유를 두고 설왕설래 했다. 그런데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주요 언론에 “윤석열 대통령 뜻에 따라 부정선거 의혹을 밝히기 위한 시스템을 확보하기 위해 계엄군을 선관위에 보냈다”고 말하면서, 국회에서 보인 계엄군의 허술한 움직임에 고개를 갸우뚱하던 네티즌들의 시선이 온통 선관위로 집중되고 있다.
김 전 장관은 ‘선관위에 계엄군을 보낸 이유가 무엇이냐’는 동아일보의 질문에 5일 “많은 국민들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함에 따라 향후 수사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시스템과 시설 확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이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결의가 있어 철수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부정 선거 의혹 조사를 위해 계엄군의 선관위 진입을 지시한 것이 윤 대통령의 뜻이었느냐’는 질문에 “예. 많은 국민들이 부정 선거에 대해 의혹을 가지고 계신다. 이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네티즌들이 이 부정선거 의혹에 관심을 갖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관련이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2020년 선거에서 패배한 후 줄곧 ‘부정선거로 패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자신이 이긴 이번 선거에서도 부정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번 대선에서 공화당은 노골적으로 ‘Too Big to Rig’란 선거 슬로건을 들고 나왔다. 표 차를 압도적으로 벌려서 선거 사기를 쳐도 통하지 않게 하자는 뜻이었다.
많은 국민들은 지난 2020년 총선 때 미래통합당이 참패하자 일부 보수세력이 부정선거 음모론을 들고 나왔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조금 다르다. 선거에 대한 시비가 본격화된 건 지난 2017년 대선 때였다. 이때 투표용지가 서로 다른 게 발견됐다는 제보가 쏟아진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모든 투표용지에는 각 후보자별 기표란 사이에 여백이 있다. 그래서 기표도장을 찍을 때 본인이 찍은 후보자 기표란에서 도장이 조금 삐져나와도 유효표로 처리된다. 하지만 2017년 대선 때는 여백이 없는 투표용지를 받았고, 도장을 조금만 어긋나게 찍으면 2명의 후보자 기표란에 걸치게 돼 무효로 처리되는 것 아니냐는 제보가 쏟아졌던 것이다. 물론 선관위는 여백 없는 투표용지는 없다고 선을 그었는데, 이때 제보를 받은 건 주로 민주당 의원들이었다. 주지하다시피 당시 당선인은 문재인 민주당 후보였다.
2020년 총선 때 민경욱 당시 미래통합당 후보를 비롯한 일부 인사들이 전자개표기, 즉 투표지분류기를 부정선거의 주요 수단으로 지목했는데, 사실 2017년에도 전자개표기가 이상하다는 의심이 있었다. KBS 아나운서를 지냈던 故정미홍 전 대한애국당 사무총장은 끝까지 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계엄군이 부정선거 수사 위해 선관위를 장악했다'는 김 전 국방 장관의 설명에 대해 윤 대통령을 비판하는 이들은 ‘대통령이 극우 유튜버 주장에 동조한다’고 조롱한다. 대표적으로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부터 부정선거 의혹에 동조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며 "미친 놈들을 떼어놨는데 결국 그들 말을 들어 이 지경이 됐다"고 맹비난했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의 설명을 계기로 ‘정말 부정선거가 있었나. 그렇다면 계엄이 이해가 된다’, ‘윤 대통령이 부정선거를 캐내기 위해 자신을 던졌다’ 등 윤 대통령을 옹호하는 반응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다수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계엄군이 선관위를 장악하기까지의 과정을 나름대로 정리해 글을 올리고 그것을 공유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앞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피격 사건이 ‘자작극’이라고 주장했던 이종원 전 서울시 부동산 자문위원은 이번엔 “트럼프의 당선 그리고 트럼프 진영이 한국의 부정선거에 관심을 두고 있다. 윤 대통령이 이런 미국의 흐름과 발을 맞춘 것 아닌가”란 진단을 내놨다.
송원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