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불어민주당이 29일 국회의장단 후보, 원내대표 선거에 당원 투표를 20% 반영하는 내용의 당헌.당규 개정을 추진한다. 당원 지지율이 높던 추미애 당선자가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서 패한 뒤, 당원들 반발이 거세지고 탈당 행렬이 이어지자 나온 자구책이다. 또 시.도당위원장을 뽑을 때도 대의원 표 비율을 줄이고 권리당원 표 비율은 높이기로 했다. 지난해 말 당헌.당규를 고쳐 권리당원의 당 지도부 선출 권한을 3배 강화한 지 6개월 만이다.
이와 함께 당론을 위반하면 총선 후보자 심사에서 ‘부적격’ 기준에 해당하도록 했다. 일각에선 당 주류와 다른 의견을 내는 이들에 대해 사실상 공천 배제를 경고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 당헌.당규 개정 태스크포스(TF) 단장인 장경태 최고위원은 2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원권 강화를 위해 국회의장단 및 원내대표 선출 선거에 권리당원 유효 투표 20%를 반영한다”며 “시도당 위원장 선출 방법에도 대의원, 권리당원 비율을 20 대 1 미만으로 동일하게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민주당은 전당대회에서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비중을 기존 60 대 1에서 20 대 1 미만으로 줄이도록 당헌을 개정한 바 있다. 지방선거 후보 선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도당 위원장 선출에서도 당원 의사 반영 비중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로 설정한 것과 관련해 장 최고위원은 “의원들의 고민이 충분히 반영되면서 당원들의 의견이 결정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숫자”라고 설명했다.
대의원제는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당원이 적은 영남권에서 ‘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만든 제도다. 1만6000명 규모의 대의원은 현역 국회의원과 지역위원장, 상임고문,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 등 당연직 대의원과 각 지역위원장이 뽑는 선출직 대의원으로 나뉜다. 이 같은 대의원 그룹은 이재명 대표가 출마했던 지난 대선 전후로 입당한 권리당원에 비해 오래됐다.
개정안은 당의 결정과 당론을 위반한 경우는 ‘부적격 심사 기준’에 해당하도록 해 공천에서 불이익을 줄 수 있게 했다. 공천 심사 또는 경선 진행 중 허위 사실을 발견하면 후보자 자격을 박탈하는 조항도 넣었다. 이 밖에 경선 후보가 3인 이상일 경우 결선 투표 실시 의무화, 당헌.당규상 ‘전국대의원대회’ 명칭을 ‘전국당원대회’로 개정, 중앙당 전담 부서에 당원 주권국 설치 등도 포함됐다.
개정안은 29일 당 최고위원회에 보고됐으며, 30일 의원총회에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친 뒤 당무위원회와 중앙위원회 의결로 확정한다는게 민주당의 계획이다. 장 최고위원은 “최고위에서 당원권 강화 안건에 대해 이견이 없었다”며 “의총에서 의견을 수렴해 특별한 내용이 없으면 빠르게 통과시킬 예정”이라고 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당 관계자는 “21대 국회와 달리 22대 국회는 당무위와 중앙위 역시 친명(친이재명)계 일색이라 무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당원 중심의 대중정당’을 강조해 왔고 강성 지지층이 당원 여론을 좌우하는 만큼 이번 개정안으로 이 대표의 당 장악력과 강성 팬덤의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입법부 전체를 대표하는 수장인 국회의장마저 특정 정당 당원들에게 좌우되면 다른 유권자들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대표이기도 한데 국민의 대표들이 모여 국회의장을 선출하는 데 당원이 개입하면 대의민주주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한 비명(비이재명)계 의원은 “대의 정치를 망가뜨리는 행위”라며 “이렇게 할 거면 국회 부의장, 상임위원장, 사무총장도 다 당원 투표로 정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친명 성향의 당 지도부 인사도 “권리당원이 국회의장 투표에 참여하는 건 좀 이상하다”며 “서울시장 뽑는 선거에 경기도민 투표를 반영하자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한빈 기자